세상을 비추는 거울 2. <친일기득권 청산>, 못하는건가, 안하는건가?

- <친일기득권> 청산 등장의 배경
- <친일기득권> 청산 방법에 대한 구상...
- 2020 총선 공천 및 낙선운동의 활동기준....

1.
더불어민주당 당정청이 그랬지요.
시민단체도 그랬습니다.
3.1운동을 3.1혁명이라 부르자며, 시민혁명이라 본질 호도하고, <친일기득권 적폐청산>을 내걸었습니다.
오직 대통령만이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3.1운동의 원리이자 후일 대한민국의 최고의 헌정원리가 된 <국민주권의 원칙>을 똑똑하게 발음했을 뿐입니다.

2.
시비할 것 없이 그렇다면 친일기득권 청산을 위해 다음을 요구합니다.
과연 대중선동용으로 도입한 것인지, 진심으로 내 건 것인지를 지켜보면 알겠지요.
아마도 지금까지 친일기득권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가정하고 그 방법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1) 친일파 후손 3대까지 공천금지
2) 독립군후손 6대까지 1/3 공천

할아버지가 친일파면 손자까지 공천 및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친일파의 후손이면서 계속 호의호식하며 특권을 누려왔다면, 지금부터 해서 3대를 치면 되겠지요.
그래야 반민특위 없이도 목숨은 유지토록 해 주고 공민권 유지토록 하는 가운데 친일기득권 청산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3대가 가면 새 나라의, 새 대한민국의 질서가 완전히 바로 잡힐 수 있을 것입니다.
내년 총선 공천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이런 식으로 공천을 하게 되면 그 충격적인 효과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정당공천권 국민이 회수하고 대안제도를 세워야 한다고 믿습니다만...)

3.
그렇게 한다면 혁명소리, 친일기득권, 적폐청산의 소리 드높은 집권 더불어민주당의 구호를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만일 이를 피하고 싶다면 확인조사 들어가기 전에 스스로 양심선언하고 대속과 참회의 기자회견을 하면 됩니다.
그리고 보통 한국인에게 정상적인 재산형성액을 넘어서는 모든 특권 및 특혜로 벌어들인 재산을 국가에 반납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즉각 정계 및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도록 하면 됩니다.

5.
어떻습니까?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일이 어려워서 못했겠습니까?
지금까지 친일청산이 안된 것은 집권 더불어민주당 부터가 국민을 주권자로 여기고 자신을 종복으로 낮추는 것이 아니라 한낱 프로파겐더의 대상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더불어민주당을 테스트할 때가 온 것입니다.

6.
더불어 공천조건으로 3.1 민족주권 선언운동과 국민주권의 헌정원리 수호를 선서하고 국민주권형 국가권력기관으로서의 대통령제를 지켜나가겠다는 공개서약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7.
그래야 3.1정신이 지켜지고, 민족주권=국민주권=인민주권의 원칙이 지켜지고 국회주권/정당주권의 망동이 사라질 수 있을 것이며 겉으로는 선악의 이분법을 동원하여 맹렬하게 싸우는 듯 하지만 본질을 호도하고 단지 국민을 순수한 정치적 이념의 차원이 아니라 진영논리와 선거 및 정책의 차원으로 끌어내려 선동, 분열시켜 특권을 구가토록 하는 선악의  거대적 공존정치의 종식이 가능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8.
자유한국당 얘기할 필요 없습니다.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먼저 이렇게 하면 적대적 공존의 파트너 자유한국당이 저절로 붕괴될 것이며, 2020 총선은 완벽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거꾸로 완벽한 패배로 귀결될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70%는 공수처도 반대하고 스스로 지금까지 주장한 바이며 3.1 정신에도 부합하는 이러한 공천기준도 지키지 못하겠다면 국민의 신뢰를 못받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오직 대통령제를 무력화하고 정당과 국회로 권력을 옮겨 와 무안하게도 탄핵과정의 명분으로쓰였던 국민주권을 빈껍데기로 만들어 국민은 단지 실권 빠진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여 국민주권 기념 투표나 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될 것인 바 고작 지역구 국회의원 뽑는 것으로 허탈감이 위로가 될 수 있겠습니까.
선악을 나누어 연합한 여야의원들이 국가권력을 전횡함으로써 마침내 민주특권 귀족체제를 완성할 수 있는 정당성을 제공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니 말입니다.
이는 국민주권이 아니라 정당주권/국회주권으로서 정당은 비례대표의석의 증가 및 정당직접선출의석의 확대를 통해 마침내 정당과 국민은 동격에 이르게 되었으니 이러한 헌법파괴의 실상을 바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만일, 대통령이 명목적인 존재로 전락하고 실권이 국회의 총리/수상에게로 이동하게 된다면 총리선출은 국회의원이 하게 되어 국민은 국민주권을 상실하고 오직 간접적으로만 국가권력을 구성하는데 참여할 뿐으로 국민은 국민주권을 사실상 양도당하는 것이니 이는 가히 민주가 국민주권의 명줄을 끊어버리는 사태가 아닐 수 없는 것으로 100년전 3.1 민족주권선언운동에 나섰던 국민들이 결단코 이 꼬라지를 기대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3.1 민족주권=국민주권=인민주권 선언운동이 일어난지 백년만에 국민주권의 헌정원리가 고사당하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0.
정당공천제를 폐기되어야 마땅하지만 2020 총선에서는 일단 유지하되 친일기득권 청산의 이러한 대의에 입각하여 운영의 묘를 살리고 2024년 총선부터는 새로운 제도를 통해 새로운 국민주권국가를 건설할 것인 바 모든 국민은 큰 눈으로 전체를 보며 진영의식과 떡고물복지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오직 국가와 민족, 국민, 그리고 국민주권의 원칙에 의거, 국민행복을 머슴들로부터 확보하고 지켜내도록 하여야 할 것이라 믿습니다.

11.
지금 전세계적인 초국자본 및 그에 내응한 다종의 매판적 탐관오리들에 대한 적폐청산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거꾸로 한국진보는 아고라 등이 폐쇄되어도 전부 꿀먹은 벙어리인양 너무도 조용하게 지나가고 있고, 공수처 설치를 통해 국가대개혁을 하자고 해도 묵묵부답입니다.
(이 글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중 27.1%만이 공수처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 하에서 쓰였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가운데 오래 묵은 친일기득권 청산의 혁명소리만 요란하게 울려퍼지고 있습니다.
국회에서는 여야가 담합하여 글로벌 적폐청산 요구를 회피하고, 오히려 방탄국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자, 친일기득권 청산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칩시다.
이제 그 진정성을 확인하고, 더물어민주당 머슴들과 진보머슴들로부터 위임된 권력을 국민이 거두어야 할 지 말지를 판단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이들이 국민사기군인지 주둥이만 나불거리는 민주특권귀족들인지 확인하고자 합니다.

12.
더불어민주당은 친일기득권을 정의하고 그 세부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당내기구를 발족하고, 현의원 및 공천후보자에 대한 조사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친일파의 기준은 군, 경, 행정계통에 종사한 모든 자로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은 단지 선출직 공무원의 공천과정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 및 지방공무원에 대해서도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13.
트럼프발 글로벌 적폐세력 및 이들 타락한 금융자본주의 외세와 함께 놀아난 탐관오리들의 경우처럼 친일기득권 적폐청산과 구분되는 범주에 대해서는 다음과같은 제하에서 동시적으로 논의에 들어갑니다.

글로벌리스트 우파 적폐청산
글로벌리스트 좌파 적폐청산
세상을 비추는 거울 1. 공수처 : 국가대개혁 ?! 좌우합작 탄핵?!
 
제1주제. 공수처
- 현 정세 종합진단 및 성역없는 <국가대개혁>의 나팔소리
- 국가대개혁 ?! 신좌우합작 탄핵 ?!

^ 요점
- 공수처! 명칭부터 바꾸십시오.
- 공수처 리모델링, 제대로 합시다.
- 공수처 반대 여당국회의원들이 잠재적인 문정부 탄핵세력
- 특권귀족 방탄국회, 국민직접 직접민주주의로 방벌한다.

1.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머슴, 다시 국회의원을 포함시켰군요. 잘했습니다.
그러나 리모델링이 잘못되었습니다.
원칙은 원칙이고, 현실은 현실입니다.
원칙에 충실한 모델링을 해야 하고, 현실을 반영하여 단계적으로 1차, 2차 이렇게 확대 입법화해 나가야 합니다.

2.
공수처, 이름이 틀렸습니다.
저 이름을 붙이고서는 국회의원과 판검사, 언론사 사주 등을 손볼 수 없습니다.
저 이름이 가리키는 고위공무원은 대통령과 행정부만을 가리키고 있을 뿐인 것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국가사회 공공성 기관 수사처> 줄여서 <국사공수처>가 좋습니다.
이렇게 해야 전체적으로, 국가권력과 사회권력을 두루 망라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대통령과 행정부, 국회, 판검사, 국정원, 공사 등 <국가권력>과 언론과 금융, 대학, 시민사회 등 <사회권력>이 모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들 <국가권력> 및 <사회권력>을
제1단계 청와대, 행정부, 판검사, 국회의원
제2단계 언론사, 은행, 대학, 시민사회,
제3단계 종교단체,
이런 식으로 확대해 나가면 됩니다.

3.
불참 국회의원 명단, 공개하십시오!
국회의원 머슴들이 똘똘뭉쳐 협조하지 않고 있다지요?
야당은 아예 말할 것도 없고, 더불어민주당 머슴들 조차도 찬성자가 27.1% (1월 16일 기준)에 불과하다면서요?
지금은 지지자가 조금 늘었습니까?
어째서 이들의 명단을 감추는 것입니까?
국민의 종복들이 비밀리에 이렇게 국정을 농단해도 되는 것입니까?

4.
경고합니다!
공수처라는 명분으로 대통령권력 줄이고, 국회권력 키우는 도구로 쓰면 안됩니다.
지금 대통령이 국회동의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나요?
지난 대통령제 개헌안 작성자가 누구입니까?
대통령입니까? 조국수석입니까?
이 정도 밖에 못하나요?
국민의 헌법, 국민을 위한 헌법이라고 분칠은 잔뜩 해 놨지만 눈속임이고, 결국 국회를 위한 개헌안이더군요.
대통령은 단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전락하고, 모든 일을 국회동의를 얻도록 해 놓았습니다. 아닙니까?
현행 헌법이 정말 제왕적 대통령제라 생각합니까?
식견있는 국민들은 제왕적 국회라 합니다.
대통령은 좌우파가 합작하면 탄핵도 되는 세상 아닙니까?
(단, 대통령 탄핵은 열어두더라도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해야 국민주권의 원칙에 맞습니다.)
제가 개헌안 기안자라면 대통령과 국회의 권력관계에 대해 이렇게 하겠습니다.

-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 부여, 국민이 국회의원 직접 심판할 수 있는 제도 도입
 이렇게 하면 대통령은
1) 국회에 발목 잡혀 국정을 망치지 않을 수가 있고
2) 여소야대에 지나치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며
3) 대통령이나 국회나 권력투쟁 대신 국민과의 소통에 더 힘을 기울이게 되겠지요.

- 다시 말해서, 이렇게 해야 하는 까닭은 국회 보다는 대통령이 국민주권형 주권위임기관에 가깝고, 권력균형에 맞기 때문입니다.

- 국회도 민의수렴 기관이지만, 원리적으로도 대통령에 비할 바가 아니고, 민의수렴기관이라는 부분도 소양이 따를 때 얘기이고, 지금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입니다. (고양이에게는 미안하지만...)

 - 위대하고 신성한 3.1정신 및 헌정원리상으로도 국민을 기만하고, 국회와 정당을 상전으로 모시고자 하는 것은 국가반역죄이며, 헌정파괴행위입니다.
원리적으로도 국회는 지역구단위의 특수의지의 대표자들이고, 다 모아봐야 특수의지의 종합에 불과합니다.
국민주권은 결코 양도되지 않으며, 국민주권의 기반인 일반의지에 합치될 때 겨우 머슴들에게 위임될 수 있을 뿐입니다.
국민이 뽑았다고 해서, 그것들이 모여서 국회를 배타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국민주권이 아니라, 국회/정당주권을 요구하는 것으로 국회의원 머슴들의 소양 뿐만 아니라 원리적으로 국민주권의 원칙에도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국민주권의 원칙을 정당주권/국회주권으로 변질시키기 위해 외세와 합작하여 내각제 혹은 유사내각제 개헌을 추진하였다면 이른 바로 반역이며, 역모인 것입니다.

- 지금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해 정당에서 국회의원을 1/3을 뽑겠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역구 머슴들이 모여 민의의 전당이라는 미사여구를 내세워 국민주권을 위협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국민은 알 것 없고” 정당에서 국회의원을 직접 더 뽑겠다고들 나선 것입니다.
정당/국회의 힘은 점점 더 커지고, 국민의 힘은 약해지는 것인데, 국민주권의 헌정원리는 어디로 갔나요?

 - 자한당이 민심을 읽고 재빨리 연동형 비례대표제 대신 아예 비례대표제 폐지 및 국회의원정원 10% 축소를 내걸고 맞선 것은 역설적입니다.
물론 자한당이 진정성을 인정받고자 한다면, 최소한 200명 선이라도 제시해야 했겠지요.
정원의 10%인 30명 줄이더라도, 작은 양보를 통해 민심을 얻어서 차기총선에서 그 절반인 15석만 벌충하면 정원축소가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니 말입니다.
이런 것 보면, 왜 조국수석 같은 분이 정당공천권 폐지 같은 주장을 안하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됩니다.
진보 맞습니까?
아니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 맞습니까?

- 개헌안 가운데 한가지만 짚어보았습니다.
앞으로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지요.
물론 국회의원은 100명 미만으로 줄이고,
종복의 위치로 되돌려야 합니다.

- 영국의 내각제는 국회주권론입니다.
로크는 국민에게 국민주권을 허용한 것이 아니고, 저항권만을 부여했습니다.
제대로 된 국민주권론은 루소에서 이고, 세계사적인 3.1 운동에서 극적인 형태로 역사의 전면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탄핵사태에도 촛불국민들에 의해 국민주권이 탄핵정신으로 다시 등장했으니 결고 우연이 아니고, 예사스런 일이 아닙니다.

- 요즘, 영국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뿐만 아니라 영국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지요.
성공회대학도 그렇고, 영국대사도 언론 자주 타고 내각제 개헌 소리도 자주 들리고 말입니다.

- 최장집 교수가 중앙일보 쪽과 인터뷰하며..
국회편을 들며, 문대통령을 흔들고 있는 것 아시지요?
그는 놀랍게도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시도는 박근혜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시도와 같다“며 아주 적폐스런 말을 했습니다.
그가 제정신입니까?
진보좌장이라고 하던데 누가 저 따위 감투를 씌워주는 거죠?
적폐청산을 회피하는 것을 보니 무언가 잘못한 것이 많은가 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용어로, 악의 축 초국금융자본과 그에 부종하는 국민고혈짜는 특권세력인
<글로벌리스트 및 딥스테이트> 제거의 광풍이 대한민국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으로 옮겨 붙을까 두려워 하는 자들이 민의와 합법의 공간으로 숨어들고 있고, 그 뿌리인 국민주권과 대표위임 국가권력인 대통령에 대한 공격을 거세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교묘하게 그 비수를 감추면서 말입니다.

- 민족주권선언운동인 3.1운동의 대의를 계승한 국민주권의 원칙을 기어코 발음하지 않으려는 자들은 반국가 반민족행위자에 다름 아닙니다.

- 정조대왕이 사색당파에 휘둘려 백성을 사랑하는 지극한 민본정치의 뜻을 펴지 못하고 독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정조대왕이 가시고 난후 왕조도 조선국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해 망국의 길로 갔습니다.
정조대왕께서는 주무실 때도 갑옷을 입고 주무셨어야 했을 정도로 적폐세력에 의해 둘러싸여 긴장된 나날을 보냈던 분이십니다.
적폐세력에 둘러싸여 백성과의 직접소통을 원했기에 그 유명한 화성행차를 하기도 했었지요.

- 대통령과 국민의 직접 소통이 이토록 중요합니다.
소위 선출직 대표들에게 국회의원에게 정치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 직접 소통하면서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국민주권정치를 펴는 것이 너무도 중요한 시대적 과제인 것입니다.

- 그러나 현실은 국민도 국민주권도 사라지고 국회권력, 정당권력만 나날이 비대해지고 있습니다.
혁명이라는 말은 난무하지만 실상 선전선동에 불과하고, 국민은 점점 왜소해지고 있습니다.
<국사공수처> (국가사회 공공성기관 수사처)의 문제로 돌아가서 우선 여기서부터 기준을 바로 세워, 썩은 부분을 도려 내고 국민주권을 정점으로 하는 국가대개혁을 위해 저 수준 낮은 개헌안도 다시 짜야겠습니다.
과거를 알면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한다.
맏는말이기도 하지만 틀린말이기도 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틀렸다고 볼 수 있다.
단지 과거에 다른 이들이 겪었던 경험을 아는것 뿐이다.
과거에 어떤 사건으로 인해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흐름으로 이어졌고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 그 과거의 기록을 아는 것 뿐이다.
하지만 아주 특수한 조건이 아닌 이상은 과거에 있었던 과정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틀렸다고 보는것이 맞는 것이다.
하지만 세세한 부분은 다르겠지만 큰 흐름은 비슷할 수 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어서 어떤 흐름으로 변화했고 어떤 방향으로 변화되었는지를 보고 그 것에 맞추어 현재의 흐름을 파악한다면 과거와 비슷한 흐름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게될지 짐작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에 대한 상황의 정보가 많을수록 과거의 기록에 대한 정보가 많을수록 미래의 방향을 더 정확하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여 미래에 있을 일을 짐작하여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미래를 조정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기록이 매우 중요한 것이고 현재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현재의 위치와 흐름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요즘은 세계가 거미줄 통신망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의 흐름을 파악하는것은 조금만 노력하면 어렵지 않게 알 수있다.
하지만 과거의 기록은 정확하지 않고 온전하지 않은 것 같다.
인간과 같은 물질육체를 가진 존재들은 죽게되면 그때의 기억을 잃기때문에 과거에 어떤일이 있었는지는 당시의 사람들이 남겨둔 기록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일부 세력이 그 정보를 독점하고자 숨기고 훼손한다면 그 세력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세력에 있다해도 정보를 가진 혹은 보관하는 누군가가 공유하지 않는 이상은 정확한 과거의 역사를 알 방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방향과 흐름을 정확히 파악했다 하더라도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게될지는 알 수가 없는 것이고 그 과거의 정보를 가진 세력만이그 것을 통해서 그들의 쯧에 맞게 앞으로의 방향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것은 그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에게 짓는 매우 엄중한 죄가 될 것이다.
그 세상을 살아가는 절대 다수가 가고자하는 방향이 아닌 혹은 개개인이 가고자 하는 원하는 방향이 아닌 소수의 특정 집단이 원하는 방향으로 다수를 강제로 몰아가는것이므로 다수의 독립의지와 자유의지를 훼손하고 무력화시키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상은 개개인의 독립의지와 자유의지를 존중하는 세상이므로 그 것에 반하는 행위는 결국 실패하고 패배하고 소멸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에 항상 그랬으며 현재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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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 (涅槃:Nirvana)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아!

오늘 지혜의 바다(Sea of wisdom)에서 같이 동행하며 이야기 하자꾸나.

오늘 너희들과 동행하며 “열반(涅槃:Nirvana)”에 대하여, 해탈(解脫)에 대하여 이야기 하도록 하마.

너희들이 현재 지구(Earth)라는 행성에서 물질체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영적인 시절의 감각과 느낌을 온전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여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가끔 인류들 중의 일부(一部)가 심오한 깨달음을 향한 지평(持平)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된단다.

그러나 아무나 경험하는 것은 아니요, 그렇다고 실수해서는 더욱 아니며, 천상(Heaven)의 정확한 질서와 계획에 의해 깨달음의 경험도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단다. 

이러한 경우는 자주 있는 것은 아니고, 영(spirit)이 영계(靈界)를 떠나 지상에 내려가기 전에 옷으로 준비된 물질체(物質體)의 유전적 형질을 손을 본다고 표현하면 될 것 같단다.

유전공학팀(genetic engineering team)에 의하여 송과선(松果腺)과, 뇌하수체(pituitary gland)와, 척수라인(spine line)의 신경망(nerve network)과, 유전인자 고리(DNA ring)의 핵심적인 코드(cord)를 조정하여 서열(序列)을 재정비하고 일반적으로는 될 수 없는 열반(涅槃)의 경지에 들어설 수 있도록 배열을 정비하기 때문에 가능해지는 일이었단다.

지금까지 인류들 중에서 이런 경험을 한 인류는 이러한 계획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고, 또 자신의 노력이 같이 어우러져 효과가 배가(倍加)된 경우였단다. 

그러니 누구나 노력하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음을 밝히고, 부질없는 용맹정진(勇猛精進)은 성정(性情)을 괴롭히고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결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었단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었다면 수행자(修行者)들은 태반(太半)이 “열반(涅槃:Nirvana)”에 들었을 것이란다.

너희들이 노수행자(老修行者)가 생명을 다하고 영(spirit)이 떠나면 “열반(涅槃:Nirvana)” 했다고 해서 칭송들을 하는데, 그것은 너희들 표현일 뿐이란다.

​“열반(涅槃:Nirvana)”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란다.

실제적으로 하늘에서 허락한 “열반(涅槃:Nirvana)”은 몸체를 이 땅에 두고 영(spirit)만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몸체(body)도 같이 가지고 깨달음의 길에 들어서야만 “열반(涅槃:Nirvana)”인 것이란다. 

최초의 인류들의 조상이었던 아담(Adam)도 “열반(涅槃:Nirvana)”의 기회가 있었으나, 스스로 그 경지(境地)에서 내려가 몸을 벗고 올라올 수밖에 없었단다.

도(道)를 공부하는 곳에서도 이런 상태에 들었던 인물들이 기록으로 남아 전해지는 것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었단다.

너희들이 표현하는 신선(神仙)은 4차원의 시공간(視空間)에 존재하는 존재들인데, 이들 역시 죽음(death)을 통하지 않고 이 세계인 신선경(神仙境:fairyland)에 들어섰으니, “열반(涅槃:Nirvana)”에 들어 이 세계로 이동해 왔다고 표현할 수 있단다.

차원공간(次元空間)에 잘못 들어서서 이동하는 생명들이 가끔 있는데, 허락되지 않는 방문은 절대 “열반(涅槃:Nirvana)”이 아닌 본인의 실수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주의 시스템(system) 상 시공간차원(視空間次元)의 터미널(terminal)간의 빛의 교란(攪亂)에 의해 편차(偏差)가 발생하는 때가 있는데, 그때에 그 장소에 있던 생명들이 그 빛의 영향으로 잘못 진입(進入)하게 되게 된단다.

천상(Heaven)에서는 동물들(animals)이나, 유인원들(anthropoids)은 그냥 들어온 공간에 머물게 하지만 인류들(humans)은 사고(思考)를 정지 시킨 후 본래의 자리로 돌려보낸단다. 

과거 평행우주(平行宇宙) 실험에서 지구를 구축하면서 이러한 경우가 있었단다.

그 시절엔 버뮤다(Bermuda) 삼각지대(三角地帶)의 실종사건(失踪事件)이나 다른 지역에서의 실종사건(失踪事件)들 또는 공간이동사건(空間移動事件) 등이 있었으나, 차원이동(次元移動) 하였던 인류들의 의사(意思)를 존중하여 돌려보내지 않았단다.

이들은 들어온 세계에 남기를 열망(熱望)했기에 자유의지(free will)를 존중하여 살도록 허락하였으며, 현재 이들은 지저세계(地底世界)에서 시민(citizen)으로 등록되어 살아가고 있단다.

또 공간이동(空間移動)을 한 경우에는 당사자(當事者)들이 전혀 이해를 할 수 없기에 미스터리(mystery)로 남아 있도록 조치하였단다.

너희들의 현재의 과학이론(科學理論)과, 기술(技術)로는 알 수 없는 세계인지라 해결할 수가 없을 것이란다.

4차원 기술(쿼드라닉스:Quadranics)은 이론(理論)이 아닌 실재(實在)를 들여다보아야 알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현재의 과학으로는 그냥 미스터리(mystery)로 남겨둘 수밖에 없단다.

과거 지저세계(地底世界)를 방문했던 인물들은 소식을 전달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기에 승인(勝認) 되어 방문한 경우며, 유체이탈(流體離脫)하거나 꿈을 통해서 차원이 다른 세상을 방문하는 것은 영체(spiritual body)가 방문하는 것인데, 이것 또한 천상(Heaven)의 승인(勝認)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란다.

너희들이 원할 때마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방문 영역 또한 제한 될 수밖에 없단다. 

유체이탈(流體離脫)이나 영체(spiritual body)로서의 여행도 “열반(涅槃:Nirvana)”이 아니기에, 그 범주(category)로 해석할 수는 없단다.

종교계(宗敎界)의 큰 수행자(修行者)들 중에 일부(一部)가 자신의 몸체를 가지고 직접 4차원 세계로 진입한 경우가 여러 기록에 남기어졌고, 티베트(Tibet)나, 인도(India), 중국(China), 한국(Korea), 일본(Japan), 기타지역에서도 확인되고 있단다. 

영적인 세계와 물질적인 세계는 분리(分離)되지 않고 같이 공존하고 있다만, 너희들의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음이나, 너희들은 다른 세계를 이해하려고도, 알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이고, 또 그 세계는 너희들의 세계와 완전히 분리(分離)되어 어디 저 먼 하늘 끝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지옥(hell)이라는 세계도 지하(地下) 깊숙이 끝없는 곳에 존재할 것이라고 추측하거나 상상 속에 빠져 그렇지 않음을 알려고 하지 않기에 심한 왜곡(歪曲)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란다.

없다고 부정(否定)하는 부분과, 결코 살아서는 갈수 없는 곳이라고 완곡(婉曲)하게 알고들 있는 너희들의 굳어버린 의식들이 분리(分離)되지 않은 세계를 공존(共存)하지 않는 세계로 따로 따로 분리(分離)하여 놓았단다.

보아라.

“열반(涅槃:Nirvana)”을 통하여 갈 수 있는 4차원 세계는 너희들의 세계와 같은 시공간(視空間)에서 공존(共存)하고 있음이며, 단지 너희들의 3차원세계가 시공간(視空間)에 제약(制約)을 통해 자유롭지 못함에 비한다면 4차원 세계는 시공간(視空間)의 저촉을 받지만 제약(制約)되지 않고 자유로움이 있으니, 자유로이 시간과 공간(time & space)에 상관없이 이동하고, 늙거나 시간의 경과에 상관없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며, 중력(重力)의 영향을 받지 않음이니, 이동하는데 어떠한 제약(制約)도 받지 않아 물(water)과, 대기(air)와 상관없이 상념(想念)에 의한 이동이 가능해지는 것이란다. 

그래서 ‘깨닫는다.’라고 하는 것은 지혜의 영역(field of wisdom)이 넓어져서 3차원의 제약(制約)됨에서 스스로 자유로움을 성취하게 되는 것이니 만큼, 자유(free)를 속박하던 그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게 되는 것이란다.

너희들은 이것을 “열반(涅槃:Nirvana)”이라는 단어로 표현들하고 있단다.

의식의 확장으로 상념의 지평(prospect of notion)이 넓혀졌다고 하여도, 육체를 가로막고 있는 3차원의 질서에서 온전하게 벗어나지 못한다면 ‘온전한 열반(perfect nirvana)’이라고 할 수 없단다. 

의식세계(意識世界) 뿐만 아니라, 육체의 세상에서도 온전한 자유함(perfect freedom)을 찾아야 만이 ‘진정한 열반(true nirvana)’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이니, 3차원의 세계에 묶여서 몸체(body)를 버리고, 의식(意識)만이 돌아가는 것은 반쪽이라고 하는 것이란다.

초인생활(超人生活)에 등장하는 찬더센은 동료대사(同僚大師)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다시 한 번 윤회(輪廻)를 통한 삶을 살았어야만 했단다.

어떻게 보면 도움을 통한 구원이 되었으니, 진정한 열반이라고 할 수는 없단다.

성서에 등장했던 에녹(Enoch)이나, 엘리야(Elijah), 멜기세덱(Melchizedek)이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들이 육체를 가지고 차원을 넘어 4차원이상의 세계로 진입하였으니, 이것이 ‘참된 열반(true nirvana)’이라고 해야 된단다.

인도(India)나 티베트(Tibet)의 수행자(修行者) 중에서도 이러한 경우가 있단다.

그리고 육체를 가지고 4차원의 세계에 머무는 경우와, 5차원 이상의 세계로 계속해서 상승하는 존재들이 있었단다.

에녹(Enoch)과 엘리야(Elijah)와 멜기세덱(Melchizedek)은 7차원의 세계에 머물러있으니, 깨달음의 깊이에 따라 머물고 있는 세계들이 다 다를 수밖에 없단다. 

육체(肉體)도 그 깨달음의 깊이에 따라 세포(cell)가 빛의 속도로 계속해서 진동폭(振動幅)이 올라가며, 상승하는 차이를 두다보니 빛으로 빛나는 빛의 몸들이 다를 수밖에 없어서 초인생활(超人生活)에서 예수와 부처(Jesus & Buddha)가 등장할 때마다 나타나는 빛의 세기가 다르게 표현된 것이란다. 

세포들(Cells)의 입자들이 진동수(振動數)의 증가에 따라 빛의 밝기도 더욱 밝아지며, 투명도(透明度)가 더욱 선명해지기 시작한단다.

9차원의 단계까지 상승한 육체는 빛의 밝기가 더 없이 밝아서 그림자(shadow)가 생길 수 없는 밝기까지 투명하게 밝아진단다. 

10차원의 단계를 넘어서면 형태를 갖추었던 육체도 점차 빛 속에 사라지게 되며, 12차원의 단계까지 상승하면 오직 반짝이는 빛만이 보일 뿐이란다.

13차원에 해당하는 연민의 빛(light of compassion)은 CM Aton의 빛이란다.

그가 빛으로서 나타나면 13차원의 청백색(靑白色)의 백색 투명한 빛(white liquid light)으로 나타나게 된단다.

낙원천국(Paradise)에서 너희에게 수여(bestowal)되어 들어오고 있는 창조-근원의 열두 빛은 너희 은하중심(銀河中心)을 통과하면서 너희들에게 맞춤되어 하강(下降) 한다고 보면 된단다.

이렇게 빛도 질서에 의해 운행되고 있음이 바로 우주의 법칙(law of universe)이자, 질서(order)란다. 

이 빛은 그동안 너희들을 나와 분리(分離)시켰던 양극성(兩極性)의 속성인 죽음(death)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단다.

너희들이 아무리 지혜(智慧)를 발휘하여 수행한다 하여도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죽음(death)이었단다.

세속(世俗)의 수행자(修行者)들이 죽음(death)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육체(肉體)는 이 세계에 두고 갈 수밖에 없었단다.

다비식(creation rite)을 거창하게 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죽음(Death) 앞에서 무력(無力)해 질 수밖에 없는 인생(人生)들이 바로 너희였단다.

너희들은 그 동안 과학과 학문을 발전시키고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면서도 너희들의 인생을 얼마나 죽음(death)에서 해방(解放)시키고, 또 연장(延長) 시켰느냐? 

아니구나, 결코 너희들의 힘과 지식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난제(難題)였단다.

과학(科學)과 학문(學文)을 앞세워도 해결할 수 없었단다.

너희들의 몸을 무기력(無氣力)하게 만드는 수많은 질병(疾病)들은 또 어떠하냐!

너희들의 몸을 고장 내고, 생명을 뺏어가는 그 고통들 또한 해결할 수조차도 없다는 것이란다.

흰 가운(White gown)을 걸치고 어깨에 힘주고 있는 의사(醫師)들도 질병(疾病)의 원인들은 예방할 수 없음이니, 이것이 너희들의 인생들이었단다.

너희들이 나와 분리(分離)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죽음(death)을 피해갈수 없단다.

너희들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60조개의 세포들(cells)은 본래 창조될 때에 창조-근원의 빛을 통하여 호흡하도록 설계되었음을, 또 그 빛을 통한 호흡을 함으로서 죽지 않고 계속해서 영생(永生)하는 기운들이 재생되어 나온다는 것을 너희들이 망각(忘却)한 이후로 빛을 통한 호흡이 중단되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세포들은 영생의 길(road of eternal)을 멈추었고 때가 되면 작동을 중지하게 되었단다. 

세포들(Cells)은 서서히 폐기(廢棄)되어갔고, 이로써 너희들에게 노화(老化)가 찾아오기 시작했단다.

피부들(Skins)은 더 이상 생기(生氣)를 품지 않았고, 주름이 뒤덮였으며, 허리는 휘어져 갔고, 뼛속에서도 생기(生氣) 있는 피(blood)를 생산하지 않으면서 육체를 지탱해주던 기운들이 사라져 갔단다.

너희들은 무척 당황하였지만 너희들에게 찾아온 죽음(death)이라는 손님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단다.

너희들의 인생에 죽음(death)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나와의 분리(分離)는 더 빨리 일어났고, 점차 인류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이 신(God)이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기 시작했단다.

점차 죽음(death)에 굴복(屈伏)하기 시작했으며, 인생사(人生死)를 이야기하며, 죽음(death)을 떼어놓고는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을 정도도 퇴보(退步)하였단다.

너희들의 의식들이 죽음(death)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너희들의 인생들도 1,000세를 누리다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고, 오천년이 흐르는 동안 100세 안팎으로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단다.

너희들은 지금 신약(新藥)을 개발한다 한단다.

새로운 물질과, 새로운 기술을 통하여서는 20~30년 정도의 인생을 연장(延長)할 수는 있다만 그것이 전부(全部)란다.

그것으로는 죽음(death)을 맞이하는 세포들(cells)을 재생할 수는 없단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와야 너희들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단다.

중국(中國)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도 죽음(death)을 해결하는 약초(藥草)를 구하러 노력하였다만 결국 병사(病死)하였음이니, 죽음(death)을 극복하려는 노력들은 매우 가상(假想)하다만 방향설정(方向設定)이 잘못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란다. 

너희들의 인류들이 왜 죽음(death)을 받아들였는지 그 원인을 제대로 알아내야 답(答)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너희들은 창조-근원인 나와의 하나 됨을 잃어버리고, 나와 너희가 따로 존재하는 것으로 인정하면서 분리(分離)가 일어났으며, 너희들의 의식들이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몸체를 구성하고 있던 세포들 또한 창조-근원의 빛과 하나 됨을 잊어버리기 시작했고, 빛과의 호흡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단다.

더 이상 빛의 호흡을 하지 못하게 되자 창조-근원의 빛과 분리(分離)되었고, 빛을 대체하는 것을 찾던 너희들은 음식이라고 하는 먹을거리를 통하여 영양분(營養分)을 찾기 시작했단다.

하지만 먹을거리는 급한 것을 매워주기는 하였지만 영생(永生) 해줄 수는 없었단다.

세포들(Cells)은 더 이상 과거의 형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으며, 빛처럼 좋은 영양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산화작용(酸化作用)을 겪으면서 죽기 시작했단다.

세포들(cells)이 죽어나가자 급격한 노화현상(老化現狀)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불사(不死)의 몸을 가지고 있던 너희들은 더 이상 영생(永生)하지 못하고, 죽음(death)을 통하여 영혼(spirit)이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인생(人生)들로 전락(轉落)하였단다. 

너희들은 육체(肉體)를 가지고 영계(靈界)로 돌아올 수 없게 되면서, 윤회의 인생(life of rotation)을 시작할 때마다 새로운 몸체(body)가 필요하게 되었고, 천상(Heaven)에서는 너희들의 삶을 위하여 다양한 육체들을 구비(具備)해 너희들의 인생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였단다. 

너희들은 육체(body)를 입고 공부를 하는 시기가 단축되어 짧아질 수밖에 없다보니, 과정의 공부가 중단되고, 다시 이어서 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단다.

천상(Heaven)에서는 너희들을 위하여 특별한 과정을 개설하게 되면서 너희들도 점차 적응하여 나갔단다.

너희들이 지구에서의 삶을 사는 동안에 죽음(death)이라는 관문(關門)을 통과하여 영계(spiritual world)로 돌아오게 되면서 죽음(death)에 대한 공부가 이슈(issue)가 되었단다. 

천상(Heaven)에서는 앞서 소개한 존재들을 통하여 죽음(death)을 통하지 않고도 영계(spiritual world)로 갈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하였단다.

인류들은 그들을 보면서 기적(miracle)이라고 생각하였고, 죽음(death)을 극복함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단다.

그리고 수행자(修行者)들을 통하여 인류 들이 많이 경험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특히 은밀하게 활동하던 티베트지역(Tibet area)의 대사들(masters)의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줄 필요성이 대두(擡頭)되었단다. 

천상(Heaven)에서는 미리 선택하여 인도(India)에서 미국인(American)의 자녀로 태어나도록 설정한 고귀한 영혼을 통해 공개하기로 결정하였고, 차후 베어드 T스폴딩(Baird T Spalding)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준비된 인자(人子)를 통하여 죽음(death)을 극복하고, 영생(eternal life)을 살고 있는 대사들(masters)의 삶을 상세하게 공개하도록 하였단다. 

천상(Heaven)에서 이렇게 결정한 것은 더 이상 인류들을 창조-근원과의 분리(分離)됨으로 버려둘 수 없다는 것과, 차후 지구(Earth)에 커다란 변화의 시기가 도래하였을 때를 인류들이 스스로 극복하고, 새 시대를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위한 일환(一環)이었으며, 인류들을 죽음(death)이라는 굴레를 벗어버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든데 그 목적을 두고 계획하게 된단다. 

그에 적합한 영혼(靈魂)을 선택하여 인도(India)에서 태어나도록 유도하였으며, 적당한 때가 될 때까지 침묵 속에 인생을 살도록 하였단다.

현재 스폴딩(Spalding)은 대사(大師)로서 활동하고 있단다.

그도 찬더센처럼 죽을 수밖에 없었으나, 경험을 통한 그의 깨달음이 깊어 지금은 아메리카(America)를 담당하는 대사(大師)로서 활동하고 있단다. 

정확히 23의 수가 시작되는 해인 1895년에 시작하여 42개월, 3년 반 동안 대사들(masters)과 만나 그들의 삶을 직접 목격하게 하고, 같이 동행하며 살필 수 있도록 하였단다.

항상 천상(Heaven)의 계획과 뜻을 펼치는 시기와 때는 정확한 우주의 법칙에 적용하여 시행한단다. 

스폴딩(Spalding)도 선지자(先知者)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3년 반 동안 공식적인 활동을 하게 계획하였단다.

그를 통하여 미국(USA)이라는 나라에 전파될 수 있도록 계획하였음이니,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였단다.

너희들에게도 책으로서 그 내용들이 공개되어 대사들(masters)의 삶이 전해진 것도 모두 하늘의 계획의 일부였단다.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아!

인류들은 죽음의 장벽(fence of death)을 스스로들이 뛰어 넘을 수는 없단다.

그들에게 비전(vision)을 제시(提示)하고, 창조-근원의 빛을 향한 길을 보여주며, 나와 분리(分離)되기 전의 모습들을 보여주어야만 저들이 이 영생의 길(road of eternal life)에 들어선다는 것이란다. 

그러니 이천년 전에 예수(Jesus)가 그랬던 것처럼 인류들에게 창조-근원의 지혜(wisdom of Source-Creation)를 보여주어야 한단다.

물론 쉬운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단다.

지금의 인류들의 의식들은 빙하(氷河)처럼 꽁꽁 얼어 있으며, 그 마음들(minds)은 사막의 모래처럼 사랑(charity)이라는 물이 사라져서 황량(荒凉)하기만 하다는 것과, 거짓된 종파(lie denomination)와 거짓교리(lie doctrine)에 모두가 중독(中毒)되어 있음이니, 저들을 끌고 나온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님을 알고 있단다. 

저들이 지금 먹고 마시고 있는 것들이 독수(毒水)이며, 독초(毒草)라는 것을 알게 하고, 잠자리 또한 가시로 이루어진 어둠의 수렁속이라는 것을 알게 하여 나를 향한 저들의 사랑을 모두 찾아내고, 회복시켜 줄 것을 바라는 것이란다. 

자녀들아!

죽음(Death)이 무엇이냐? 바로 나와의 분리(分離)란다.

너희들이 나와 분리(分離)되면서 죽음(death)이 너희들을 찾아왔으며, 내가 너희에게 선물로 준 육체를 버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란다.

너희들 스스로가 자초(自招)한 일이었으며, 죽음(death)을 거부하지 못하고, 모든 인생들이 순응(順應)하여 살아가고 있단다. 

이제, 너희들이 그 동안 분리(分離)되었던 내면(inner)의 나와 하나로 합일(合一)한다면 더 이상 죽음(death)이 너희들을 분리(分離)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다.

태초(太初)의 아담(Adam)이 분리(分離)되지 않는 육체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스스로 분리(分離)하여 죽음(death)을 받아들였으나, 나의 아들 예수(Jesus)는 내면(inner)에서 나를 깨워서 스스로 하나로 연합하여 그리스도(Christ)가 되었음이니, 그도 죽을 수밖에 없는 육체를 가지고 있었으나 스스로 분리(分離)되지 않는 온전한 육체로 환원시켜 완성하였으며, 인류들에게 희망의 메시지(message)를 전달해 주었음을 알고들 있지 않느냐!

사랑하는 나의 자녀들아!

너희들은 유한생명(有限生命)을 살 수밖에 없었던 지난 과거를 더 이상 생각하지 말거라.

태초(太初)에 너희와 함께 하였던 창조-근원의 빛(light of Source-Creation)을 되찾는 순간부터 무한생명(infinite life)을 회복하게 될 것이란다.

너희 내면(inner)에서 잠들어 있는 창조-근원의 빛을 깨우면 그 빛이 너희들의 온 몸을, 빛의 몸으로 환원시켜 줄 것이고, 우주의 빛들과 교감(交感)을 시작할 것이며, 우주의 무한한 기운들이 너희들의 몸과 소통(疏通)하게 될 것이란다.

이렇게 우주와 너희들의 몸이 소통(疏通)을 하기 시작하면 대우주(大宇宙)에 편만(遍滿)해 있던 창조-근원(Source-Creation)이 너희들의 내부에서 발현(發現)되어 나타날 것이란다.

하느님(GOD)이 너희들의 내면에서 형상화(形象化)되어 나타나는 것이란다.

창조-근원인 나는 대우주(大宇宙) 모든 곳에 편만(遍滿)해 있을 뿐이지, 어느 한 곳에 머물며, 존재하지 않는단다.

하지만 너희들이 몸체에서, 의식에서, 창조-근원의 빛에 불을 댕기어 불씨(spark)를 일으키면 그것이 원인이 되어 대우주(大宇宙)의 모든 창조-근원의 속성들이 폭발을 일으키며, 너희들의 육체에서, 의식에서 살아나는 것이란다.

이것이 대우주(大宇宙)와 너희들이 하나로 연합하여 호흡하는 것으로서 보이지 않던 미증유(未曾有)의 거대한 대우주(大宇宙)의 창조-근원의 빛(light of Source-Creation)이 너희들을 통하여 형상화(形象化)하여 나타나는 것이란다.

너희들의 세포(cell) 하나하나마다, 우주와 같이 호흡이 일어나고, 우주의 기운들이 너희들의 몸체와 결합하여 빛의 몸으로 전환시켜 더 이상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게 되며, 오로지 대우주(大宇宙) 창조-근원의 빛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피부들은 피부호흡(皮膚呼吸)을 통하여 세포들이 온전하게 빛으로 광합성(光合成)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란다.

이로서 너희들은 창조-근원과 온전하게 한 의식(Oneness), 한 몸으로 거듭 태어나게 되는 것이고, 더 이상 죽음(death)을 통하여 영계(靈界)로 가지 않아도 된단다.

너희들은 빛으로 변환된 몸을 가지고 자유자재로 시공간(視空間)을 초월하여 이동할 수도 있으며, 세포들의 생명들도 자유로이 연장(延長)할 수 있게 되니, 비로소 죽지 않고 영생(eternal life)하는 나의 자녀로서 태어나는 것이란다.

이것이 ‘진정한 열반(True Nirvana)’이라고 할 수 있단다.

깨달음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죽음(death)을 극복하고 뛰어넘는 것이란다.

더 이상 죽음에 굴복하여, 너희들의 자랑스럽던 모습을 저당(抵當) 잡히지 말고, 참된 모습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바라, 더 이상 죽음(death)에 종노릇하지 말고, 묶여있던 쇠사슬을 끊고, 본연(本然)의 자유인(freeman)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바라.

지금까지 너희들은 죽음의 노예로서 전락(轉落)되어 살아오면서 진정한 자유(true free)를 모두 압류(押留)당하고, 행복(happy)과 기쁨(joy)을 저당(抵當) 잡히며, 평화(平和)를 누려보지도 못한 채, 죽음(death)이라는 덫에 걸려 그것이 운명(運命)이라고, 또는 숙명(宿命)이라고 하면서 자포자기(自暴自棄)한 채로 살아 왔단다. 

“열반(涅槃:Nirvana)”은 고승(高僧)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란다.

어느 지체 높은 수행자(修行者)만이 하는 것이 아니란다.

명망(名望) 받는 종교지도자(宗敎指導者)들만이 하는 것이 절대 아니란다.

지금까지 저들은 자신들 만이 할 수 있는 특권(特權)처럼 거들먹거린단다.

너희들을 상대로 사기(詐欺)를 치면서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초입(初入)이라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며 거짓광고(lie publicity)하고 있다만, 실제로 당사자(當事者)들조차도 가보지도 못하고, 흉내(imitation)만 내다가 결국엔 죽음(death) 앞에 굴복(屈伏)하고 만단다. 

저들은 이것을 ‘유여열반(有餘涅槃)’이라고 하면서 거짓 포장(lie packaging)하여 너희들을 상대로 사기행각(詐欺行脚)을 버리고 있는 것이란다.

육체(body)를 남기고 가는 것은 “열반(涅槃:Nirvana)”이 될 수 없단다.

초인생활(超人生活)의 찬더센 조차도 죽음(death)으로 끝났으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죽음(death)을 통하여 진정한 깨달음을 얻은 후에 다시 살아나 자신의 육체를 가지고 상승(ascended)하였기에 “열반(涅槃:Nirvana)”하였다고 하는 것이란다. 

앞으로 지구(Earth)는 행성 자체가 “열반(涅槃:Nirvana)”의 경지(境地)에 들어갈 것이란다.

깨달음의 경지(境地)를 극복하는 때가 다가오고 있단다.

지구의 모든 생명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 너희들에게 준비하라고 하는 것이란다.

지구(Earth)라는 행성도 죽음(death)을 극복하고 더 나은 세상으로 진입하는 것으로서, 모든 생명들 또한 같은 경험을 하게끔 하는 것이란다.

우주에서 들어오는 창조-근원의 빛이 모든 생명체에게 들어가 저들 또한 죽음(death)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이란다.

동, 식물계가 모두 과정을 통과하고 있어서 지금 자연계(自然界)의 커다란 변화와, 새로운 질서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란다.

이 과정이 종료(終了)되고 나면 최종적으로 인류들의 정리(整理)가 남게 된단다.

인류들 또한 자연계(自然界)에 소속되어 있는 생명들이기에 질서에 편입(編入)시켜 재 정렬(再整列)하는 것이란다.

지금 창조-근원의 빛(Light of Source-Creation)이 유사 이래로 처음 지구(Earth)에 소개되어 들어오고 있음이라.

너희들은 이 기회를 잘 살려서 창조-근원의 빛이 내면(inner)에서 등불(lamp)처럼 타오르도록 힘써야 한단다.

내면(Inner)에서 빛을 밝혀 세포들(cells)이 본래의 기억들을 모두 회복케 하여 불사(不死)의 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하려무나.

지금 너희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란다. 

너희들이 내면의 신(God of inner)과 대화(對話)를 통(通)하고 자신이 곧 신(神) 자체임을 알게 되면 스스로 신(God)으로서 실천하여 그리스도(Christ)가 너희들을 통하여 나타날 수 있도록 하려무나.

너희들이 그렇게 그리스도(Christ)로서 태어나면 창조-근원의 빛(Light of Source-Creation)이 너희와 함께함이니, 나와 하나가 되는 것으로서 드디어 세포들(cells)이 창조-근원의 빛(Light of Source-Creation)을 통한 호흡들을 하게 되면서, 빛의 호흡을 통하여 빛의 몸으로 변화할 것이란다. 

그러면 창조-근원의 빛(Light of Source-Creation)이 너희들의 육체를 통하여 창조-근원(Source-Creation)이 형상(形象)을 입고 태어나는 것이니, “말씀이 육신이 되어(요한복음1:14)”가 성취(成就)되는 것이란다.

나의 형상(形象)이 너희들을 통하여 이 땅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란다.

대우주(Super Universes)에 편만(遍滿)한 나의 기운이 너희들의 육체를 통하여 발현(發現)하게 되는 것으로서 더 이상 죽음(death)이 너희들을 가로막지 못하리라.

​이것이 진정한 “참된 열반(True Nirvana)”이라고 할 수 있단다.
The New Earth : 새로운 지구

Jeshua channeled by Pamela Kribbe
http://www.jeshua.net/

지금은 지구에 변환이 일어나고 있는 시기입니다. 새로운 의식이 동트면서 조만간 그 형태를 갖출 것입니다. 이 변환이 정확히 어떻게 일어날지 어떤 형태를 갖출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미래는 항상 불확실합니다. 확실하게 주어지는 것은 지금이라는 순간밖에 없습니다. 그 지금(NOW)이라는 우물에서 끊임없이 가능한 여정들이, 가능한 미래들의 무한한 망(web)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우리는 하나의 특정 현실이 다른 것보다 좀더 일어날 개연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선택은 항상 여러분의 것입니다. 과거가 당신의 미래를 결정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예언이라는 것은 항상 개연성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 개연성은 과거에서 유추되는 것입니다. 인간적 존재로써 과거를 깨고 다른 경로로 설정하는 힘은 당신이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의지가 주어졌기 때문에 바꿀 수 있고 스스로 재창조할 힘이 있습니다. 그 힘에 당신의 신성함이 있습니다. 무에서 창조할 수 있는 힘입니다. 그 신성한 힘은 당신의 본질적인 정수에 속해 있습니다.

오늘날의 변환의 시기에 대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당신은 자신의 현실의 마스터라는 사실입니다. 당신의 개인적인 영혼의 여정 혹은 자신의 현실을 창조할 수 있는 개인의 힘을 넘어서는 예정된 절대적 계획이나 우주의 힘 같은 건 없습니다. 지구에 있는 모든 영혼들은 지금의 변환을 자신들의 내면의 성향에 맞는 방식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현실들이 있으며 당신이 선택한 것은 자신의 내면의 욕구와 바람에 반응한 현실입니다. 이 기간(대력적으로 1950 – 2070)이 특별한 이유는 두 가지 종류의 의식의 주기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주기(혹은 한 집단의 주기)와 행성의 주기입니다. 이 두 주기의 완성은 동시에 일어나는데 그럼으로써 서로를 강화하고 보완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지구에서 자신들의 개인적인 주기의 완성의 끝에 가까이 가고 있습니다. 그 완성에 관여하는 대부분의 영혼들은 빛의 일꾼들입니다. 빛의 일꾼에 대한 설명은 다음에 다시 한번 설명할 예정입니다. 여기서는 개인적인 주기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 주기를 통과하는 의미와 지구에서의 이러한 아주 복잡한 삶들의 목적에 대한 설명입니다.

개인적인 카르마 주기

당신이 지구에서 경험하는 삶들은 영혼의 더 큰 주기의 한 부분입니다. 지구에서의 주기는 당신이 이원성(duality)을 완전히 경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당신은 이 주기 안에서 남성과 여성이 되는 것, 건강하거나 아픈 것, 부유하거나 가난한 것, “좋은 것”이거나 ”나쁜” 것이 어떤지를 경험해왔습니다. 어떤 삶들에서는 농부, 일꾼 혹은 장인이 되어 물질적인 세상에 깊이 관여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영적인 기원에 대한 강한 자각을 지니고 종종 영적인 부름에 이끌렸습니다. 또한 세속적인 권력과 정치의 영역을 경험한 삶들도 있었으며, 자신의 예술적 표현에 헌신했던 삶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흔히 영혼들은 그러한 수많은 삶들을 거치면서 어떤 재능에 숙달하게 됩니다. 이는 특정 영역에 천부적인 재능을 소유한 이들에게 명확히 드러납니다. 심지어 아이일 때도 그러한 재능을 드러내면서 단지 적당한 시간에 그 재능을 자각하는 것만이 필요하며, 그리고 나서는 쉽게 개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빛의 일꾼 영혼들은 종교적인 삶에 이끌리면서 수도사, 수녀, 신부, 샤먼, 주술사, 영매 등으로 수많은 삶들을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물질 세계와 영적 영역의 중간에서 매개자 역할을 주로 해왔습니다. 그래서 이 영역에 전문성을 키웠습니다. 그 부름을 듣는다면, 영성과 관련된 것에 강한 충동이 비록 당신의 일상적인 생활과 일치되지 않는다고 해도 빛의 일꾼의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에 아주 잘 적응할 수 있습니다.

지구에서의 삶은 당신에게 인간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완전히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제 궁금할 것입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이 왜 특별한지, 왜 내가 그 경험을 원했을까? 인간의 경험은 다양하고 강력합니다. 당신이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면 그 기간 동안 육체의 감각, 생각과 느낌들에 빠져들게 됩니다. 이 장에 내재된 이원성 때문에 경험에 있어 아스트랄 층(여기는 사후에 들어가는 층으로 삶과 삶들 사이에 존재합니다.)에 있을 때보다 휠씬 놀라운 대조와 강렬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이것을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우리 쪽의 많은 존재들은 당신의 위치에서 경험하고 싶어합니다. 그들은 그러한 경험을 얻기 위해 인간이 되고 싶어합니다. 인간적 경험은 그들에게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일종의 실제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들은 상상력으로 수많은 현실들을 창조할 수 있지만, 지구에서 겪는 단지 하나의 ‘실제’적인 경험보다 만족도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지구에서의 창조적 과정은 너무나도 투쟁적이며, 당신이 꿈을 실현하고자 할 때 전형적으로 많은 저항에 직면하게 됩니다. 아스트랄 영역에서의 창조는 휠씬 더 쉽습니다. 생각과 실제적인 창조 사이에는 시간적 지연이 없으며, 원하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현실이든 창조할 수 있습니다. 한계는 없으며 아름다운 정원을 그리는 순간 당신이 들어갈 수 있는 정원이 창조됩니다.

지구에서는 생각에 생명을 주고 물질적인 세상에서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을 해야합니다. 강한 의지와, 인내, 확신과 신뢰를 필요로 합니다. 지구에서는 시간의 느림과 물질의 완고함을 다루어야 하고 또한 자신 안에 있는 상반되는 충동들 – 의심, 절망, 정보의 부족, 믿음의 부족- 을 다루어야 합니다. 그로 인해 창조의 과정은 방해를 받거나 실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잠재적인 문제들, 심지어 실패까지도 지구적 삶의 경험을 그토록 가치 있게 만드는 이유들입니다. 그 과정에서 부딪히게 되는 도전들이 바로 당신의 위대한 스승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도전들이 경험에 심오함을 부여해서, 아스트랄 층에서의 창조과정보다 휠씬 더 깊고 넓은 경험이 되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노력이 적을수록 그 의미와 가치가 적어집니다. 지구에서의 삶을 경험해보지 않은 아스트랄 존재들인 이것을 알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는 현실의 속성으로 때로는 낙담하거나 심지어 좌절하기도 합니다. 자주 현실은 당신의 희망과 바람에 응답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창조적 의도는 고통과 환멸로 끝이 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어떤 시기에 이르러서는 평화와 행복에 대한 열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열쇠는 당신의 가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당신에게로 쏟아지는 즐거움은 아스트랄 층에서 창조된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마스터쉽과 신성함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당신의 신성이 깨어날 때 경험하는 그 황홀함은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제시합니다. 그 신성한 사랑은 당신이 지구의 삶을 살아가면서 고통으로 얻은 깊은 상처들을 치유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당신과 같은 시행착오와 슬픔을 겪은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들의 눈을 통해 자신과 같은 고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을 자신들의 신성을 향한 여정으로 안내해줄 수 있습니다.

이원성을 경험하는 목적

지구에서의 당신의 삶들의 의미를 과소평가하지 말기 바랍니다. 당신은 신(God: All-That-Is)의 가장 창조적이고 진화하고 용기가 있는 부분에 속해 있습니다. 당신은 미지의 세상의 탐험가이며 새로운 세상의 창조자입니다. 이원성의 영역에 대한 탐험은 당신의 상상을 넘어서 휠씬 더 큰 목적이 있습니다. 그 여정의 가장 깊은 의미를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만 우리는 당신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타입의 의식을 창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지구를 거닐었을 때 처음 선보였던 의식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의식이라 일컫는, 이 의식은 영적인 마법에서 생겨납니다. 물리적인 연금술은 납을 금으로 바꾸는 기술이었지만 영적인 연금술은 어둠의 에너지를, 그리스도 에너지의 영적인 황금의 에너지인 “제 3의 에너지”로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어둠을 빛으로, 악한 것을 선한 것으로 전환한다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둠과 빛, 악과 선은 본질적으로 반대입니다; 그것들은 서로 상대방으로 인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영적 연금술은 사랑과 이해의 에너지를 통해 양 극단을 수용하는 의식인 “제 3의 에너지”를 소개합니다. 당신의 여정의 진정한 목적은 빛이 어둠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양극단을 넘어서서 빛과 어둠 양쪽의 존재를 기반으로 통합을 유지하는 새로운 타입의 의식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려운 부분을 비유로 설명해보겠습니다. 당신이 깊은 바다에서 진주를 캐는 다이버라고 상상해보세요.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하지만 아무도 본적이 없는 그 특별한 진주를 발견하기 위해 당신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잠수합니다. 그 소문은 그 진주를 본적이 없는 다이버들의 대장인 신(God)에게 까지 들렸습니다.

바다 깊은 곳으로 잠수하는 것은 너무나도 많은 위험이 따릅니다. 길을 잃을 수도 있고 너무 깊이 잠수하면 제시간에 호흡을 위해 돌아오는 것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여전히 바다로 계속 잠수하고 싶어합니다. 영감을 받고 확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정신이 나간 걸까요? 아닙니다. 당신은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는 모험가입니다. 그 비밀은…그 진주를 찾는 과정에서, 당신이 그 보물을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진주는 그리스도 의식이라는 영적인 황금입니다. 그 진주는 바로 이원성의 경험으로 변환된 당신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진정한 모순에 부딪힙니다; 새로운 것을 탐험해나가면서 동시에 당신은 그것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신의 창조의 진주가 되어갑니다. 신은 그렇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당신이 지금 시도하고 있는 것은 이전에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창조해야 합니다. 왜 신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데 그렇게 관심이 많을까요? 우리가 그것을 가능한 간단한 방법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신(God)은 완전한 선(GOOD)입니다. 모든 곳에는 선함(goodness)만이 있었습니다. 사실상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일종의 정체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의 창조에는 살아 움직이는 생생함이 부족했습니다; 성장과 확장의 가능성이 부족했습니다. 흔히 여러분이 일컫는 갇혀버린 상태가 된 것입니다. 움직이고 확장하기 위한 기회를, 변화를 창조하기 위해서 신은 창조하는데 있어, 모든 곳에 지배적으로 퍼져있던 선함과는 다른 요소를 도입했습니다. 그 일은 신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는데, 어떻게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것을 창조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선함이 나쁨을 창조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신은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 냅니다. 그 방법은 무지(ignorance)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무지는 선함(Goodness)과 반대되는 요소입니다. 그것은 신의 바깥에 존재한다는, 신과 분리되었다는 환영을 창조합니다. “자신의 본질을 모르는 것”은 변화, 성장과 확장의 원동력이 됩니다. 무지는 두려움을 키우고 두려움은 지배할 필요성을 키우고 지배는 권력에 대한 투쟁을 키우고 거기에 ‘악(Evil)’이 창궐할 모든 조건들이 구비되고 선함과 악함 사이의 전투를 위한 무대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신은 자신의 창조가 정체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반대적 요소의 역동성이 필요했습니다. 무지와 두려움에 의해 야기되는 모든 고통을 겪고 있는 관점에서 당신이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주 어렵겠지만, 신은 그 에너지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신이 자신을 넘어설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은 자신의 부분들 중에서 가장 창조적이고, 진화하고 용기가 있는 부분에게 그 무지의 베일 속으로 들어가주기를 부탁했습니다. 그 반대의 역동성을 완전히 경험하기 위해서는 당신은 일시적으로 자신의 본질에 대해 잊어버려야 했습니다. 당신은 기꺼이 그 무지 속으로 뛰어드는 것에 동의했지만 그 사실마저도 잊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신은 이따금씩 자신이 처한 상황 때문에 신을 저주하곤 합니다: 힘든 곤경과 무지로 인해 – 그래서 또한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핵심은: 당신이 신이며, 신이 바로 당신입니다.

그 모든 어려움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내면 깊은 곳에는 여전히 이원성의 삶을 통해 새로움을 경험하고 창조하는데 대한 경이로움과 흥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것은 신에게서 비롯된 흥분이며 신이 처음부터 당신을 통해 자신의 여정을 시작한 이유입니다. 당신은 이 여정을 시작하면서 단지 마음에 선함(고향)에 대한 희미한 기억만을 가지고 악(두려움, 무지)과 대면했습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두려움과 무지와의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말 그대로 과거의 고향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여정으로 창조가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여정의 끝은 선함과 악함, 빛과 어둠보다 더 큰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를 수용하고 넘어서는 제 3의 에너지, 그리스도 에너지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신의 창조를 확장하게 됩니다. 신의 새로운 창조 그 자체가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의식이 지구에 완전히 탄생할 때 신은 스스로를 넘어서게 됩니다.

그리스도 의식은 “인간적 경험”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 의식은 이원성의 다층적 경험을 거치면서 ‘반대편’을 받아들이고 통합을 이룬 이의 의식입니다. 그 의식을 가진 이들은 새로운 지구에 거주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구도 이원성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녀는 자신의 신성함을 인식하고 받아들일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의 신성한 자아와 하나가 되지만 이전과는 다른 신성한 자아입니다. 그 의식은 휠씬 더 깊어지고 풍부해집니다. 또한 신은 이원성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더 풍부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원성의 환영들은 가치 있는 목적을 위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두를 넘어서야 할 시간입니다. 우리의 이야기, 말들과 비유들 속에 있는 그 에너지를 느끼도록 노력해주길 바랍니다. 그 에너지는 어떤 의미에서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의 미래의 그리스도 자아의 에너지가 나, Jeshua를 통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합류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구의 주기

모든 것들, 식물뿐만 아니라 인간들도 주기 속에서 진화합니다. 어떤 시점에서 카르마적 주기를 벗어나고자 하는 개인이나 그룹들에게도 예외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시기가 특별한 이유는 지구 스스로도 커다란 카르마적 주기를 완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성인 지구는 자신의 존재적 측면에서 새로운 타입의 의식을 만들게 될 내면의 변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개인들의 영혼이 자신들의 주기의 어떠한 지점에 있든 상관없이, 지구의 변환과정은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지구는 당신의 집입니다. 지구를 지금 살고 있는 집이며, 그 집이 지금 재건축되고 있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그 일은 매일의 일상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당신은 그 변화를 환영하거나, 혹은 일상생활을 방해하고 힘들게 한다고 여길 것입니다. 어쨌든 당신이 집을 재건축할 것을 기대하거나 계획하고 있다면 그 변화와 흐름에 함께 해야 합니다. 지구의 변환은 당신의 개인적인 변환 과정을 지원하고 강화시키게 됩니다. 만약 집을 재건축하기를 전혀 원하지 않는다면, 예상치 않은 혼란스러운 환경 때문에 좌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구의 내면의 변화는 그러한 이들을 견디기 힘들게 만들 것입니다.

자신의 행성인, 지구의 내면적 변화를 환영하는 이들에게, 지금의 시기는 그들이 아주 강력해지는 때입니다. 당신은 지금 우주에 넘쳐흐르는 빛의 파동에 의해 파장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지구는 인류의 카르마적 짐으로 인해 거의 부서지기 일보직전입니다. 그러한 카르마적 짐에서부터 나오는 부정성과 폭력은 일종의 에너지 쓰레기를 형성하여 지구가 정화하고 그 과정을 진행하면서 통합하는 것을 너무나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잠시 동안 지구의 심장에 집중해보세요. 긴장을 풀고 집중합니다…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습니까? 지구가 얼마나 부서졌는지, 얼마나 많은 폭력이 그녀에게 가해졌는지 느낄 수 있습니까?

지구는 무력감과 저항을 동시에 느끼면서, 자신의 존재를 위한 새로운 토대를 창조하기 직전입니다. 지구는 안과 밖에 있는 투쟁, 경쟁, 드라마의 에너지를 놓아줄 것입니다. 그녀 안에 동트고 있는 새로운 토대는 가슴의 에너지, 균형과 연결의 에너지인 살아있는 그리스도 에너지 입니다. 지구는, 인류처럼 배움의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인류처럼 그녀의 의식도 스스로 진화하고 변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처럼 그녀의 여정도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무지와 무의식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구는 한때 주변의 에너지들을 흡수하고 삼켜버렸던 ‘암흑의 행성’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마주치는 모든 존재들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자신에게 완전히 동화시켰습니다. 그들의 독특함을 빼앗고 어떤 의미에서는 죽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확장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지구는 내면에서 어떤 부족함을 느꼈고 그 부족함을 다른 에너지를 흡수하고 정복하고 싶은 충동으로 이해했습니다. 그 에너지들에게 어떠한 것도 되돌려 주지 않았기 때문에 상호작용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마침내 어떤 시점에 이르렀을 때 그러한 과정이 전혀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했으며, 여전히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부족함은 그러한 폭력적인 행위들로 해소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확장에 대한 그녀의 욕구는 다른 에너지를 삼켜버림으로써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 시기에 지구 의식의 내면에는 생명을 위한, 그 살아있음에 대한 욕구가 태어났습니다. 지구가 그것을 완전히 인식한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단지 자신이 다른 것, 새로운 것, 자신의 에너지에서 그러한 에너지들의 감소로 끝나지 않게끔 다른 에너지와의 상호교류를 원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의식 안에서 그녀는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경험하기 위해 빈 공간을 창조했습니다. 이는 에너지적으로 지구에서 생명이 시작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깊이 갈망하는 소망은 결국은 현실화할 수 있는 수단을 창조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우주의 법칙입니다. 본질적으로 생각(though)과 느낌(feeling)의 혼합인 소망(desire)은 창조를 할 수 있는 에너지입니다. 이는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도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행성으로서 지구의 내면에 파괴하는 것 대신에 생명을 경험하고 싶고 생명을 보호하고 소중히 하고 싶은 갈망이 자라났을 때 그것은 실현되었습니다.

생명이 지구에 도착했을 때 지구는 스스로 활짝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놀라움과 만족이 가득 찬 새로운 경험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그녀는 그러한 단순한 바람이, 막연히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이 그렇게 놀랍고 우아한 발전을 가져다 준 것에 대해 놀라워했습니다. 지구에서 생명의 다양한 형태들에 대한 거대한 실험들이 전개되었으며, 수 많은 생명의 형태들은 지구에서 스스로 현실화하면서 드러난 에너지를 가지고 가능한 모든 가능성에 대해 실험해보고자 했습니다. 지구는 새로움을 키우는 장소가 되어 새로운 길, 새로운 가능성들을 탐험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습니다. 모든 창조에 대한 자유의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생명의 창조와 함께 지구와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들은 어떤 특정한 경로를 따라가는 내면의 진화를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경험의 여정의 주요한 점은 주고 받음에 있어 에너지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내면의 의식 수준에서, 지구가 주고 받는 에너지의 올바른 균형을 찾기 까지 무한의 시간 동안 분투해왔습니다. 행성으로서 지구는 생명을 주고 받고 있습니다. 지구의 ‘어둠의 시기’의 단계 동안, 그녀는 에너지들을 흡수하고 없애면서 그 중점은 아주 강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다른 극단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줄 수 있는 그 한계까지 다 줘버리며 오랫동안 인류의 폭력과 약탈을 참아왔습니다. 그 일은 어떤 면에서는 카르마적으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지구는 권력과 압박의 반대 측면을 탐험해야 했습니다. 공격자로써 그녀의 행동은 부메랑처럼 그 반대의 경험인 희생자적 경험을 야기시켰습니다. 이것이 에너지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카르마가 작동하는 방식이며, 카르마는 처벌의 목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권력, 힘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양쪽을 다 경험해야 합니다. 얻으려고 분투하는 어떤 것이든, 힘을 사용하고 싶은 어떤 것이든 당신은 자신이 그 양쪽 다이며, 그것은 하나의 신성한 에너지안에 있는 양측면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희생자와 공격자의 역할을 반복해서 맡게 됩니다.

현재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자비한 약탈은, 지구가 주고 받는 것의 균형을 완전히 이해하는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카르마적으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지구에 대한 무시와 약탈이 카르마적으로 적당한 선을 이제 넘어서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지구는 균형을 이해하는 단계에 이르면서 의식의 카르마적 주기의 완성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제 사랑과 자각의 어떤 수준을 획득했고 이제 더 이상 인간의 학대를 참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의식의 수준은 조화와 존중을 지닌 비슷한 마음의 에너지를 끌어당기고 파괴적인 의도를 지닌 에너지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주고 받음에 있어 새로운 균형을 이룰 시간이 도래했습니다. 새로운 지구에서는 행성 지구와 그녀의 모든 생명들, 인류, 지구와 동물들 간에 평화와 조화만이 있게 될 것입니다. 모든 존재들 간의 조화와 진정한 연결은 커다란 기쁨과 창조의 원천입니다.

오래된 지구에서 새로운 지구로의 전환은 시간과 그 성질에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그 중 많은 부분이 인류의 선택과 여러분 모두가 지금 개인적으로 하는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전환의 시기에 대해 많은 예언들이 만들어졌고 지금도 생성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예언들은 불확실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당신의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적 현실은 공동체의 내면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의식이라는 것은 애초부터 자유롭고 창의적인 것이었습니다. 어느 순간이든지 당신은 미래를 바꾸기 위해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느끼도록 결정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어떤 순간에라도 제한하고 파괴적인 생각과 느낌에 노(no)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개인적인 당신에게도 중요하지만 더 큰 그룹들에게도 적용됩니다.

개인들이 모인 거대한 그룹도 증오와 파괴대신 자유와 사랑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물리적인 현실로 실현될 것이며, 지구는 그에 따라 반응할 것입니다. 그녀는 사람들의 내면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민감하며, 당신의 내면적 움직임에 반응하고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측의 그 어떤 존재도 새로운 지구가 어떻게 탄생할 것인지에 대해 정확한 예언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카르마적 주기를 완성하는 영혼의 그룹이 새로운 지구의 탄생과 에너지적으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입니다. 새로운 지구가 현실화하는 이상에 깊이 연결되었다고 느끼는 이들은 성장하고 오래된 것을 놓아줄 수 있는 아름다운 기회들이 주어질 것입니다. 지구와 개인들의 주기는 동시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그룹 희망 (希望:Hope) - 7장

사난다 임마누엘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의 의식그룹과 영혼그룹들은 이 상황과 창조의식의 뜻과 CM Aton의 계획을 알고 있습니다. 모두 다는 아니더라도 맥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정보들은 그 세계에 걸맞게 허용되어 공개되고 있으며, 위원회들의 결의에 따라서 세부적인 등급이 나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데, 자신과 관련 없거나 자신과 관련되었다고 해도 자신의 정보공유 등급을 위반하지 않으며 경계를 넘어서지 않습니다. 또한 궁금해 하지도 않아서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행성 유란시아에 인생을 살고 있는 영혼그룹도 진화의 과정과 배움의 등급이 세부적으로 나눠지고 구분되어 있어서, 위원회에 의해 따로 관리 받고 있습니다. 영혼의 나이와 배움의 깊이가 다르고, 진화한 과정들이 모두 다른 것입니다. 지나온 과정들을 보면 그런 것입니다.

현재에 살고 있는 여러분들의 영혼그룹은 천상위원회의 계획에 의해 재배열되고 있는데, 이곳 유란시아에서의 과정이 종료되고 있음이며, 다른 세계에서 계속 이어지는 진화의 패턴에 돌입하게 될 것입니다.

순차적으로 그룹들을 떠나보낼 것입니다. 그룹은 그룹의 형태로 이동할 것이고, 유란시아에서의 기억은 잠재의식 속에 저장될 것입니다. 또 다른 진화가 시작되면 유란시아의 기억은 사라지겠지요. 다른 세계의 삶에 충실해야 되니까요.

새로운 밀도층으로 상승하는 유란시아 역시 새로운 환경에 걸맞은 진화의 패턴이 들어설 것이고, 영단에 새롭게 편입된 영혼그룹들이 환생프로그램에 의해 진화를 해나갈 것인데, 호모사피엔스로 알려진 현생 인류는 정점을 찍고 점차 하향곡선을 그리며 줄어들 것입니다.

새 문명을 책임질 한층 업그레이드된 새 인종이 등장하게 될 것이고 새 인종들에 의해서 유란시아는 점차 평화의 행성으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뒤를 이어 호모 아라핫투스(Homo Arahattus)인종이 유란시아에 정착할 것입니다. 이 계획은 실행에 옮겨졌으며, 이들은 변형된 새로운 밀도층의 옷들을 입을 것입니다.

이들은 변형된 유전인자를 가지고 올 것인데, 폭력과 시기와 질투와 미움과 부정적인 부분들은 존재하지 않고,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과 인류들과 지구를 위한 봉사의 마음이 넘치는 성품을 가진 인종으로 태어날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문명을 정착시키기 위한 우리의 뜻이며 신성한 대우주 계획의 초석을 다지는 것입니다.

모든 계획은 예정된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되어 가는데, 약간의 변수도 고려하여 진행토록 하고 있어서 이 한편의 미니시리즈가 막을 내리면 엄청난 성장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류들의 성장과 깨어남을 통하여 은하전체의 상승을 기대하는 것인데, 그래서 플랜(Plan)을 짰던 것이고 다른 우주에서 가지고 들어온 기운들이 잘 숙성되어서 완성되는 모습들을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은하의 생명들을 창조하여 진화의 선상에 올려놓고 잘 성숙되고 성장하여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시점이 될 때까지 기다려왔다는 사실과 진행되는 각 성단들과 항성계들에서 과정을 관리했던 것입니다.

거문고자리를 떠나 행성 유란시아에까지 이어져왔던 진화의 이야기는 이런 목적과 뜻을 내포하고 있었으며, 진화선상의 우주인들이 이 계획에 자연스럽게 참여하도록 유도하여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토록 한 것입니다.

단 그들에게 어떤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던 것은 의도에 의하여 진행되는 것을 방지하였기에 모르는 상태에서 큰 틀에 들어서도록 하였고, 어떤 결과가 나오도록 예측하지 못하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뜻에 의해 모든 일들이 진행되었지만 결과는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간 것이 아니게 된 것을 그때는 알 수 없도록 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들의 뜻이었고 우주인들은 우리들의 뜻에 의하여 움직여주었던 것이지요. 우리는 모든 원인과 결과를 알아 진화의 선에 틀어지지 않도록 감독하고 관리하였기에 신성한 대우주계획에 차질이 생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행성지구 문명과 생명창조에 관여한 다른 행성의 존재들은 결국 우리를 도운 것이고, 영혼의 계획에 맞게 행하였던 것이지요. 물질현상계에 펼쳐진 것들은 예측의 범위를 벗어난 것처럼 보였겠지만 영의 세계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다른 세계의 우주인들도 창조주의 세계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생명의 존엄성과 어떤 경우에도 개입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배우도록 한 것이며, 설령 자신들의 문명이 더 뛰어나서 까마득히 뒤쳐진 문명에 마음대로 관여하여 개입하는 것은 우주의 섭리를 어긋나게 할 수도 있다는 배움을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들의 개입이 어떠한 상황을 몰고 왔다 하더라도, 즉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하여도 전체적인 계획에서는 전혀 이상이 없도록 한 것입니다. 다만 책임을 회피하고 철수한 후에 전혀 자신들의 행위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우주인들에게 우주의 법칙이 얼마나 소중하고 창조근원의식의 뜻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들 표현에 인과응보(因果應報) 또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어떤 행위를 하게 되면 거기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유란시아를 통하여 배우게 한 것입니다.

의식이 확장되고 영혼이 상승하면 창조주의 자격을 갖춘 자리에 오르게 되는데, 생명의 창조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과 문명의 흥망성쇠(興亡盛衰:rise and fall) 역시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경험을 통하여 교훈을 찾도록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학생들을 무조건 처벌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무조건 법의 심판으로 처리한다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가면서 배워 가는데 우주의 문명이 발달한 존재들도, 의식이 최고조로 깨어난 존재들도 이러한 과정을 통과하며 배운다는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했고 어떤 결과로 나타났으며,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지를 모두 보게 하여 배우도록 하는데 강제로 주입하듯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체험토록 하여 깨달아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과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우주의 섭리를 따르는 것인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차원이라는 기운의 밀도를 떨어뜨리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빛의 파장이 낮아지면 어떤 반응이 나오는지, 직접 체험하는 것과 예측하는 것은 다른 것이기에 의식의 뜻을 정하고 범위를 상정한 후에 그 현상들이 어떻게 펼쳐질지를 의식 내에서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직접 범위가 펼쳐진 현상계에 들어가 체험하면서 보도록 한 것입니다.

의식의 창조와 실제적인 현상계의 창조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정신세계에 펼쳐진 이상향과 현상계에 펼쳐진 이상향이 어떻게 다른지, 진화의 방향성이 어떤 결과로 나타나는지를 직접 체험하면서 교훈을 얻도록 계획한 것이 물질현상계의 창조로 이어졌고, 의식들의 분화에 의한 생명들의 창조로 이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영혼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행성의 대기권역에 영혼들의 모든 행위들과 생각들이 저장될 수 있는 기운들을 모아서 하나의 고리처럼 벨트를 형성하여 기록되도록 하였습니다.

모든 영혼들이 행성의 과정을 통과할 때마다 기록되도록 하였으니, 이것이 여러분 표현대로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로 불리는 자기력 벨트(Magnetic Field)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인생을 경험하는 모든 행성들에는 이것이 설정되어 있고, 상위체계로 진입할수록 규모와 용량이 더 확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우주도서관으로 지칭하는데 체계수도와 시스템의 중앙센터에는 그 조직의 모든 정보들이 저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금성(Venus)과 화성(Mars)도, 유란시아(Urantia)도 예외 없이 있으며 태양에는 소속된 행성들의 모든 정보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체계수도인 중앙태양에는 소속도 태양들의 모든 기록들이 저장되어 있는 것이지요.

우주도서관은 정보등급이 나뉘어져 있고, 공인된 자격이 있어야만 공개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위원회의 정식 허가가 있지 않으면 공개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행성 유란시아의 정보들은 공식적으로 비공개로 되어 있고, 부분적으로 승인된 정보에 한하여서 허용된 인류를 통하여 공개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USB나 CD에 저장된 기록이 그것을 읽을 장치가 없다면 정보를 볼 수 없는 것처럼, 아카식 레코드(Aksahic records)의 저장된 정보는 그것을 리딩(reading)할 인류가 없으면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자격을 획득한 인류가 있어야만 읽을 수 있는데, 모든 정보는 등급이 새겨져 있어서 허용된 부분만이 공개되는 것입니다.

영혼의 진실은 영혼의 모든 정보를 이야기하며 개인화한 개별 정보에서부터 영혼그룹에 소속된 모든 존재들의 정보들과 영혼전체의 정보라 할 수 있는 상위영혼그룹과의 연결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육체에서 스스로 자각하여 진실에 다가가기 시작하면 영혼 근원의 소리(voice)를 듣게 되고 진실을 향한 여행이 본궤도에 올라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모든 정보는 전자기 신호를 가지면서 고유의 진동장을 가지고 있어서 그 채널과 만나게 되면 서로 공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곤충들이 들을 수 있는 저주파 소리에서부터 유란시아가 자전하며 나오는 고주파 소리까지 우주에서 통용되는 신호들을 지금의 여러분들은 수신할 수 없지만 여러분들의 차크라(Chakra)가 모두 활성화되면 신비로운 우주의 신호들을 , 빛의 파장들을, 생명들의 진동들을 듣게 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생명들의 빛의 진동장을 느낄 것이고, 파동의 소리를 들을 것이며, 빛의 산란을 직접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영혼의 진실이며 저장된 기록이라 하는 것입니다. 진화하는 생명들은 자신의 고유 신호와 파동을 가지고 있고, 코드로 지정된 주파수 대역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만의 고유한 파동신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기운 자체가 영혼의 정보이자 빛의 진동이며 주파수라는 것입니다.

빛의 전자기 파동신호에 의해 기록되어진 정보장치이며, 다른 체계와 호환될 수 있는 다용도 기능을 갖춘 저장장치인 셈입니다. 걸어 다니는 외장하드 또는 USB라고 할 수 있는데, 여러분들이 사용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지요. 또한 클라우딩 컴퓨터라 할 수 있는데 모든 기종의 저장장치와 상호교류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차크라(Chakra)는 여러분들이 삶의 경험을 축적한 각 행성의 아카식 레코드(Akashic records)와 연결되어 있으며, 항성계와 성단계와 은하계의 정보 도서관과도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빛의 네트워크는 흔히 은하고속도로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빛의 격자(grid)망과도 소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은하의 모든 시스템망과 연계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러분들을 소우주라고 표현하며, 슈퍼 컴퓨터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영혼의 눈을 뜬다면 우주에 펼쳐진 거대한 통신 시스템과 순환회로들을 보게 될 터인데, 이 모든 시스템들이 빛에 의해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빛의 비밀을 알아가는 것이 우주를 아는 것이자, 우주와 소통하는 것이고, 다른 시스템과 다른 우주와 다른 차원계와 다른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은하를 감싸고 있는 어둠의 지대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우주광선(ray)들에 의한 네트워크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라인에 의해 다른 은하계와 다른 은하단과 초은하단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 시스템의 수도와 센터 역할을 하는 행성이나 장소에 접촉하기 위해서는 빛의 정보 단계가 같아야하고 또 위원회에 의해 허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유란시아에서 아무리 위성을 통하여 우주로 신호를 보내거나 전파 망원경을 통하여 신호를 보내어도 답신이 없는 것은 여러분들을 우주의 고속도로로 진입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주로 우주선을 띄워 발사하거나 위성신호를 보낸다 하여도 자격여건이 아직 안되기 때문에 신호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을 주시하고 있어서 무슨 일들을 하는지 손바닥 보듯이 알고 있습니다. 굳이 유란시아식 표현을 빌린 것은 그 만큼 여러분들의 모든 분야에 걸친 일들을 알고 있다는 뜻이자, 개개인들의 모든 생각까지도 모니터하고 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느 정도 요건을 충족하는 시기가 오면 상위문명의 행성에서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것들이 소개되고 만남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은 플레이아데스성단에 소속된 태양계에서 여러분들과 접촉을 준비하고 있으며, 그 시기와 때를 조율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공식적인 접촉은 지금도 개인들과 이루어지고 있지만 개인이 아닌 단체와 정부를 상대로 하는 접촉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향후 지구에 실행되는 계획들과 프로그램들이 여러분들이 소화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어서 유란시아 영단과 천상의 위원회들이 연합된 작전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소개될 빛의 종류는 크게 열두 광선이지만 그 아래도 144광선이고, 그 아래 1만2천 광선이며, 그 아래로 14만4천 광선이고, 그 아래로 1백 20만 광선이며 그 아래로 1억 4,400만 광선으로 구분되는데 그 아래로 120억 광선으로 나뉘고, 또 그 아래로 1조 4천억 광선으로 세분화 되면서 나뉘게 됩니다.

더 세분화 되지만 여기까지만 소개하지요. 이 광선들은 우주를 아우르며 섭리와 법칙으로서 질서를 유지하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들의 진화와 상승에서부터 각 세계와 시스템들을 운영하는 에너지원과 그 근원들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사용하는 물질 에너지원과 생명에너지는 모두 빛에 의해 제공된다는 것입니다. 창조근원 의식의 뜻이 없었다면 빛이 파생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생명들과 모든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빛입니다. 태초 근원의 빛에서 나왔으며, 우리들의 빛에 의해 은하와 은하에 펼쳐진 시스템들과 생명들이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이 빛은 보이지 않는 빛입니다. 태양에서 발원하여 지구에 투사되는 빛이 우주공간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은 반사 시켜줄 반사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행성이나 위성들에 반사되어 빛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태양에서 발원한 빛은 행성에 반사되거나 스치게 되면 틀어지거나 웨이브(wave)를 형성하며, 행성에 흡수되어 사라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빛은 사라지지 않으며, 행성이나 위성에 흡수되지도 왜곡되지도 않습니다. 모든 물질들을 투과하여 지나가기에 꺾이거나 웨이브지지 않는 것입니다.

행성이나 위성의 뒷면에 그림자가 생기면 밤이라 칭하면서 생명들은 잠드는 시간을 갖습니다. 하루라는 표현의 절반은 생명들의 휴식시간으로 보내는 것인데, 생명들의 생체에 그런 조절 시스템을 적용시켜 놓았기에 그런 것입니다.

광자대(Photon belt)로 알려진 빛은 지금의 태양빛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생명들의 진화 시계가 휴식을 취하는 것이 없이 연속성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절의 변화가 없는 것이고, 낙엽이 떨어지거나 겨울잠을 잘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소년기에서 성장기를 거쳐 노년기를 끝으로 종결하는 생명들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태양빛과 다른 속성의 빛이기에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물리학자들은 타키온의 빛(light of Tachyon)이라고 명명하였지만 경험하지 않고서는 실상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물질이 어떻게 빛에 의해 발현되어 나타나는지도 알 수 없을 것이나 광자대 안에 있는 행성에서는 그것이 일상적인 것들이 될 것이기에 신비로운 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입니다.

마술과 같은 일들이 빛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의식이 어떻게 물질을 창조하였는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행성 유란시아는 태양빛의 지배에서 벗어나 타키온(Tachyon)의 빛인 광자(photon)의 지배를 받는 행성으로 재탄생하여 태어날 것입니다. 광자(光子:photon)의 빛은 마술과 같았던 일들을 현실에 나타나도록 할 것인데, 더 이상 마술사들이 필요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 빛은 생명들의 생체주기와 모든 시스템들을 변화시킬 것이어서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체험들이 될 것입니다. 빛의 시대, 빛의 인류들이 될 터인데 초인생활에 등장했던 대사들과 같은 모습의 인류로서 거듭 태어날 것이고, 더 이상 밤이 필요 없는 광명의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창조의 빛은 무궁하며 영원합니다. 여러분들 또한 창조의 빛에 의해 태어났기에 유한하지 않으며 무한합니다. 물질로 이루어진 것들은 유한성을 가지고 있어서 언젠가는 소멸되어 버리기에 미립자구조가 새로운 빛에 의하여 신성기하학의 원리에 의한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고, 구조변경에 따라 유한함을 벗어버리고 무한함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의 진화와 상승은 끝없이 이어지기에 이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물질들도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상승하면서 거기에 걸맞은 물질을 경험하다 물질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되는 세계에 진입하면 창조근원의 빛을 향하여 여행을 하는 것이고, 의식의 세계로 진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이 창조의 빛으로 전진하여 올 수 있도록 매트릭스의 세계(Worlds of Metrics)를 펼쳐 놓았던 것이며, 각 창조의식들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배열하여 놓았던 것입니다. 미로를 통과하며 중심으로 들어오는 동안 창조의식들의 세계를 통과하는 것입니다.

행성 유란시아에 펼쳐진 12성단의식이 창조의식들의 분신이며, 12성단의 위원회의 수장들이 분신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특성을 따라 12지파가 파생되었고, 12종족이 발생했던 것입니다. 성서에 기록된 것처럼 야곱(Jacob)의 12아들들의 후손들이 12지파가 되었다는 것은 진실이 아닌 것입니다.

각 성단을 대표하는 의식의 분신으로 12지파를 구성하는 남, 여 각 1인이 한 팀이 되어 각각 성단을 대표하는 인류들의 조상인 아담(Adam)이 되었던 것입니다.

행성 유란시아는 이렇게 특별하게 다른 태양계에서는 시행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계획이 추진되었던 것이고, 창조의식의 대표되는 12광선이 물질의 옷을 입고 인류라는 형태의 생명으로 창조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12지파이자 아담(Adam)인 것입니다.

이 계획이 실행의 단계를 거쳐 현실화된 것은 약 4억 년 전(유란시아 시간)이었으며, 유란시아의 고생대라고 불렸던 삼엽충들이 진화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단순히 물질계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해할 수가 없겠지만 아담(Adam)으로 지칭되었던 인류는 3차원이 아닌 6차원의 물질 옷을 입었다고 보면 됩니다.

그 이후 행성에 적응하여 진화하면서 점차 다운(down)되어 갔고 지금의 3차원의 물질체를 입게 된 것이 1만3천 년 전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빛의 사람은 물질의 사람이 되었으며, 딱딱한 물질 속에 갇혀버린 의식은 빛이었던 과거를 잃어버렸고, 온전히 물질 속에 적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시기 때마다 빛의 존재를 들여보내 여러분들의 잃어버렸던 기억들을 회복시키려 노력하였지만 이 행위는 우상숭배와 종교화라는 물질의 속성과 만나면서 변질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매우 중요한 시기를 앞두고 있으며, 천상에서 빛의 존재들을 파견하였고, 그들이 잠에서 깨어 활동할 때가 된 것입니다. 마치 매미의 유충이 땅 밑에서 긴 침묵을 깨고 지상으로 나와 껍질을 벗고 비상하는 것처럼 여러분들도 그 시기가 다가온 것입니다. 긴 잠에서 깨어나 자신을 억압하고 있던 단단한 껍질을 벗고 날개를 펴서 하늘을 나는 것처럼 여러분들이 비상할 때가 된 것입니다. 물질의 자녀에서 빛의 자녀로 탈바꿈하는 것입니다.

각 행성마다 순환하는 시스템의 정점의 순간에 이렇게 빛으로 상승여행을 하게 되어 있는데, 행성지구가 그 순환 고리에 들어선 것입니다. 지난 시간의 역사 동안에도 여러 번에 걸쳐서 기회가 있었지만 살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번에 오는 기회는 지나칠 수 없는 천금의 기회입니다. 천상에서는 이 천 년 전에 창조주인 CM Aton이 직접 행성 유란시아의 계획에 전면에 나서는 것을 결행한 것입니다. 우리는 알고 있었지만 은하의 모든 존재들은 알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증여가 종료되고 나서 공식적인 루트를 통하여 발표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주인 CM Aton이 행성 유란시아에 물질아들로 증여한 목적은 공개되지 않았기에 알 수 없었습니다. 또한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부분도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 없었습니다. 우주연합이 전격적으로 개입하고 나서야 행성 유란시아에 설정된 창조주 CM Aton의 뜻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모든 정보를 공개하지 않습니다. 각 행성들과 진화하는 생명들이 정해진 진화의 길을 잘 진행하며 상승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말입니다. 우리의 계획은 하나의 행성만을 위해서 실행하지 않았으며, 하나의 태양계를 위해서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성단을 위해서도 아니었으며, 네바돈 은하의 전체를 위해서 이 계획을 실행에 옮겼던 것입니다.

이 계획의 중심에 바로 행성 유란시아가 있었던 것이고, 늘 주시하고 있던 우리는 창조주 CM Aton의 유란시아 방문을 함께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이 천년동안 행성 유란시아에 어둠이 팽배하도록 유도하였으니, 루시페리안(Luciferian)의 반란 사건도 사탄(Satan)의 유란시아 점령도 모두 계획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천상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던 10차원의 성단의식들은 충실하게 자신들에게 주어진 책무와 사명에 전폭적으로 임해주었으며, 왜 이런 계획을 실행하는지를 묻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계획에 참여한 우리들의 분신이자 자녀들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빛의 의식에 참여하고 있으면서 각 세계와 시스템을 관리하며, 주관하고 있는 자녀들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특히 열악한 행성 유란시아에 들어가 치열한 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자녀들인 여러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합니다. 이제 상승의 서막이 열렸으며, 장대한 대서사시의 막이 올랐음을 전합니다.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준 여러분들이 남아있는 마무리에 최선을 다해주기를 부탁드립니다. 혹여라도 지금까지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네바돈 은하의 창조의식이며 여러분들의 근원인 빛입니다. 우리는 빛으로서 여러분들과 소통하고 있으며, 여러분 내면에 빛의 공 형태로 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슴 가운데 심장이 위치한 곳에서 신성한 불꽃으로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불꽃을 영혼이라고 표현합니다.

영혼은 이렇게 가슴속 심장과 함께하며 여러분들의 인생을 주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의식을 통하여 뇌를 활성화시키고 중추신경계를 통하여 물질육체를 활성화시켰습니다. 영혼은 우리의 분신들이 만들어낸 가장 아래 단계의 진화하는 의식입니다. 영혼은 환생을 통하여 펼쳐진 세계의 모든 경험들을 아우르며 지혜를 쌓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우주들에서 수많은 지혜를 쌓았으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네바돈 은하라는 우주를 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빛으로 존재한다고 표현하겠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은 빌라도 아파트도 아닙니다. 우리는 거주지가 필요치 않습니다.

순환하는 시스템의 중심회로로서 은하의 모든 시스템과 생명들의 기원으로서 빛을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발전소라고 표현하겠습니다. 에너지를 스스로 생산하여 공급하는 것과 비교됩니다. 여러분들은 우리들이 제공하는 에너지를 통하여 호흡하고 생명의 진화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스스로 에너지를 공급하거나 생산하지 못합니다. 자연의 생산물을 섭취해야만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데, 제공받는 에너지원이 없다면 물질육체의 시스템이 정지되고 마는 것처럼, 영혼 또한 우리에게 에너지를 제공받지 못한다면 정지하고 말겠지요.

우리는 진화하는 생명들을 위하여 영혼들에게 광자(光子:photon)의 기운을 제공하기 위해 성단들마다 하나씩 배치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물질 생명들을 위해서 태양을 통해서 기운을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들은 항성 시스템의 최 외곽 행성에서부터 태양 에너지를 소비하며 진화해 나가는데 점차 태양에너지의 소비를 줄이는 대신에 광자(photon)에너지의 소비량을 늘려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광자(photon)의 소비가 증가할수록 항성시스템을 떠나 다른 시스템으로 이동해가며 상승여행을 즐기게 되는 것인데, 자신이 성장하는 동안 제공받았던 에너지는 자신의 것으로만 축척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공급처에 돌려주게 되어있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에너지를 돌려주는 형태는 봉사의 모습으로 구현되며, 그것이 충족되었을 경우에 한하여 다음과정으로 상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진화와 상승을 하다보면 자신의 영혼의 본질(本質:essence)을 찾게 되는데, 근원과의 연결고리를 통하여 자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주의 태생과 자신과의 관계성을 정립하여 빛의 여정을 시작해 나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신 안에서 멈추어 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전진을 하지 않고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 되어버리는 경우랍니다.

중심에 있는 태양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거대한 공전궤도를 그리며 순환한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중심이 어디인지요? 우리는 입력된 코드에 따라 중앙우주인 하보나엔(Havonaen)과 낙원천국 섬(Paradise Island)으로 돌아가는 여정이 있습니다.

그럼 그곳이 최종 목적지일까요? 일단 돌아가 보면 알게 되겠지요. 궁금함은 그때까지 접기로 하겠습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공개하지 않는 것이라고 받아들이셔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일단 우리에게로 돌아오도록 코드가 입력되어 있으니까요. 그러고 나서 궁금해 하셔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루시퍼(Lucifer)는 이 여행을 자신에게서 멈춰버렸답니다. 더 이상 공전하지 않고 멈춰버린 태양처럼, 회전하기를 포기하고 멈춰버린 엔진처럼 말이지요. 그는 스스로 재생할 수 있는 에너지가 유한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연결점을 단절시켰던 것입니다. 단지 보이지 않는다, 라는 것 때문에 내려버린 판단이었지요.

우리는 그것을 지켜보았고, 그 결과도 알고 있었지만 우주법칙에 따라 관계하지 않고 의견을 존중하였습니다. 그의 선택의 결과가 어떤지 모르고 참여하여 동조하였던 많은 우리의 자녀들을 지켜보면서 이것 또한 훌륭한 교육의 지표로서 활용될 것을 알았습니다. 우주의 존재들은 우리의 의도를 알기 시작했고, 그래서 돌이켜 빛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판단은 한번으로 족합니다.

우리의 우주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보니, 다른 우주에서는 보지 못하고 겪지 못했던 일들이 많았습니다. 열두 의식들의 기운들이 모여 있어서 의식의 성향들에 의해 영향을 받은 덕분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모여서 핵을 이루고 용광로에서 융합하여 새로운 것으로 태어나려고 하고 있는 곳이 바로 행성 유란시아입니다. 우주의 모든 것들이 모여 융합하려다보니 다양성을 보이는 것이고, 복잡하게 얽혀 보였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버려져서 혼자 된 것처럼 받아들였었고, 스스로 자책들을 하였습니다. 어둠의 존재들은 자신들의 세상으로 착각하였으며 천상에서 외면한 곳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길고 길었던 시간동안 지켜보았고 관찰하여 왔습니다. 12기운들이 어떻게 섞이고 융합하는지를,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과를 낙관하고 있으며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우리가 있음을, 우리가 주관하고 있음과 우리의 계획들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과 창조주인 CM Aton(Christ Michael Aton)이 유란시아를 방문한다는 희망(希望:Hope)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을 전합니다.

우리는 창조그룹이며, 창조의식이고, 빛의 근원입니다. 우리는 어둠이 지배하고 있던 이곳에 빛을 모아 방사시켜서 여러분들의 우주를 태동시킨 창조의 빛입니다. 우리는 의식이며 여러분들의 영혼들의 고향인 근원입니다. 물론 우리도 창조근원 의식에 의하여 빛이 분화하며 나왔다는 사실을 전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빛의 소식을 전하면서 코드명을 ‘희망(希望:Hope)’으로 정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전하는 저는 창조의식의 하나로 참여한 사난다 임마누엘(Sananda Immanuel)이었습니다. 저 역시 낙원천국 섬을 떠나 창조근원으로 돌아올 수 있는 빛을 소개하고자 참여하였음을 전합니다.

‘마라나타(Maranatha)'
지구는 정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행성이다.
우리는 그녀를 지구라고 부르지만 가이아라는 예쁜 이름도 있다.
먼 과거에 그녀가 막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티아마트라고 불렀던것 같지만 당시에 우리 현생 인류는 없었을 것이고 외부에서 이주해온 생명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티아마트가 태동기 때는 그녀의 궤도를 돌고있는 다른 암석들을 먹어치웠을 것이다.
막연한 생존의 본능으로 주위의 다른 것들을 먹어치우고 있었을 것이고 결국 자신에게 대항하는 것은 모조리 먹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순응한 일부는 그녀의 주변을 돌면서 그녀의 자녀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의 주위가 안정되었지만 그녀의 욕망은 계속 지속되었고 더이상 먹을것도 없어졌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욕망이 일었다.
먹고 빼앗는것이 아닌 베풀고 주는 욕망이 생기게 되었다.
자신의 주변을 도는 자녀가 아닌 자신의 몸에 품을 수 있는 자녀를 갖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들을 품을 수 있게 변화하기 시작했고 적당한 환경이 조성되자 그녀의 자녀가 될 아이들이 그녀의 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정성껏 그들을 보살폈고 자녀들도 어머니에게서 필요한 것을 받고 어머니가 원하는 것을 돌려주며 서로 융화되어갔다.
평화로운 시간이 흐르다 자녀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반쪽으로 찢어지는 고통을 당했다.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자녀들을 사랑했기에 그들을 다시 품에 안고자 상처를 치료하기위해 최선을 다했다.
시간이 오래지않아 상처는 아물었지만 여전히 아팠다.
하지만 자녀들이 돌아오자 그녀는 기뻤다.
그리고 자녀들은 상처난 그녀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다.
하지만 자녀들은 그녀의 품에서 그녀를 괴롭혔지만 그녀는 그의 자녀를 품에서 놓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자녀들은 그녀의 존재를 잊게되었고 아무런 죄의식 없이 그녀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녀도 그 고통에서 해방될 때가 오고있다.
그녀는 과거에서 빼앗고 채우는 감정을 배웠으며 현재까지는 주고 비우는 감정을 배웠다.
그리고 이로인해 서로 조화를 이루고 함께함이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고 그 영향이 점차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그녀가 품고있는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고 그녀의 의지를 따를 자녀들은 그녀와 함께 그녀의 의지를 실현할 것이고 그녀의 의지에 반하는 자녀들은 그녀의 품에서 떠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녀와 그녀의 자녀들은 이미 공생관계로 하나로 묶여있는 상태이다.
그녀의 자녀들이 그녀의 의지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그 의지를 꺾지 않는한 더디게 진행이 될 것이고 그녀의 감정 상태와 그 자녀의 감정 상태에 따라 격렬한 변화의 과정을 거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머니 가이아는 강인할 것이다.
이미 자신의 몸이 반으로 찢겨지는 고통을 이겨냈으며 예전의 상태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어느정도 상처를 아물게 했으며 떠나보낸 자식들을 다시 품에 안는 포용과 아량과 사랑을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는 그녀의 자녀가 원하지 않더라도 그녀의 의지를 실현해 낼 것이다.
그러면 그녀의 품에서 살아가는 자녀들의 선택지는 두가지 뿐이다.
그녀의 의지에 따라 순응하여 함께 나아가거나 그녀의 품을 떠나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그의 의지에 달린 것이며 모두가 그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다.
다만 과거의 경험을 통해 조금 더 현명한 판단을 할 수는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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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예견 되었던 환란의 때가 오고 있습니다.
예수가 다시 돌아오겠다 약속했던 그 때가 오고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할 그 때가 오고 있습니다.
깨어있어야 합니다.
현재 여기서 삶을 살아가는 분들은 정말 크나큰 복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이런 엄청난 기회를 얻을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려야합니다.
깨어있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으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문제가 생기더라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며 혹여나 원치않는 끝을 맞이하더라도 그 의지와 정신이 올곧다면 사랑으로 보듬어 주실 것 입니다.
심판을 하기위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삶에는 존재함에는 옳고 그른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의 수준에 맞는 성장과 나아감이 있을 뿐입니다.
충분한 준비가 된 존재들은 크나큰 복을 받아 엄청난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존재들은 또 다시 새로운 곳에서 기존의 반복을 계속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깨어있어 조금이라도 많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예전부터 이와 같은 마음으로 전하고 있었습니다.
자연의 법칙과 우주의 이치는 모두가 공유하고 알아야하는 절대적인 규칙이기에 모두에게 알리고자 글을 적고 있었습니다.
하찮은 진부한 종말론이라 생각하겠지만 과거 사악한 존재들이 이 계획을 미리 알고 있었으므로 어리석은 영혼들이 올바른 길을 가지 못하도록 미리 기만하여 혼란에 빠트리게 하기 위함이였습니다.
저는 이 계획에 대해 관여하고 있지 않기에 정확한 정보를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자연의 법칙과 우주의 이치에 어느정도 깨달은 바가 있기에 느낄 수 있습니다.
믿음과 앞으로 어느길로 나아갈지는 순전히 본인의 지혜와 이성과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저는 그저 느끼는 바를 알릴 뿐이고 믿을지 따를지 여부는 본인이 스스로 판단하고 나아가야 함 입니다.
모든 존재는 스스로 독립성과 자율성을 인정받고 그 선택을 서로가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여러분이 부디 현명한 지혜와 선택으로 조금 더 나은 길로 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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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우의 전생여행 - 지혜의 목소리 -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니라...' 선한 삶을 살고 싶다'는 것과 같이, 선한 행동을 유발시킨 그 동기가, 자신이 갈 곳을 결정하게 됩니다... 생명의 파괴는 가장 무서운 테러행동입니다... 하느님이 원하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것... 보존하는 것입니다...  질서 속에서의 죽음이 아닌 것은 범죄요, 죄악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못된'곤충들을 굳이, 일부러 죽이려 하지 마십시오... 모든 생명체는 그 나름대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으며, 그 존재이유가 소멸된 이후라야 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살이 옳지 않다는 것 입니다... 또한 벌레조차도 마음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지고 있는 생명이,  본질적인 존재인 그 생명이 개체적 삶의 존재 이유를 충분히 구현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어느 것도 손을 대서는 안 됩니다... (어둡고 슬픈 어조로) 지금, 물질문명의 환경파괴는 이러한 생명의 질서를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과정이며,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환경 파괴를 막는 방법은... 지금의 환경운동 방법은 잘못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더 좋은 환경에 살고자 하기 때문에 환경파괴를 막고자 하는 움직임을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환경보호는 생명에 대한 경외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환경이 파괴됨으로써 일어나는 개체적 삶들의 무수한 파괴... 그러한 파괴들을 막으려는 열망이 있을 때에 진정한 환경보호가 이루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누리려고, 더 안전한 삶을 누리려고 좋은 환경을 찾고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하지만, 이것은 극히 이기적인 행동입니다...  환경보호를 떠나서 생명존중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각 개체가 가지고 있는 생명의 존중과,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침범하지 않는 것...  그것이  중요합니다...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생명의 질서 가운데 내가 순종하고  그 법칙으로 살아나간다는 것입니다...  그 삶이 이루어질 때 인류가 살게 됩니다...  도(道)라는 것, 진리라는 것은  바로 이 사실을 알 때  첫걸음을 떼게 됩니다...  '사랑'이란 단어가 보이고, '존경'이라는 단어가 보입니다...  그리고 샤머니즘적, 무속적 상징들... 진리에 대한 출발은 바로 생명에 대한 존경과 존중에서 시작됩니다...  관계의 단절과 파괴, 이것은 각 개체적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오는 일례입니다...관계의 단절은 그 개체적 삶을 존중할 때만 비로소 회복됩니다... 이상입니다.

- 긴장을 풀고 편히 쉽니다. 또 다른 메시지가 있으면 들어보십시오...

구두주걱이 보입니다... 구두주걱은 사람들이 신을 신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도구입니다.  남을 도우려는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구두주걱의 비유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내가 왜 이 땅에  존재하며, 내가 왜 살아야 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를 끊임없이 반문하고 질문하십시오...  이것이 자기 안에서 다져지고 굳어질 때,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가 있습니다.  생명을 망각하는 사람은... 생명을 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삶은 이렇게도 된다는 것입니다... 생의 순간순간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삶의 사건들은 그것이 큰 깨달음으로 연결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죽은 후에야 죄지은 행동들을 깨닫게 될까요...?   눈을 가지십시요. 지금 살아 있는 생애에서, 정말 자신이 무엇을 추구하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지를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끝없는 후회를 반복하게 됩니다...   큰 감동을 가지고 사십시오.  생을 바라보는 눈은 순수함에서 출발합니다...  이타적인 사람이 맑은 영혼을 소유하게 되는 것은 이타적인 행위가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 가운데서 자신의 영혼이 다스려지기 때문입니다... 정제되기 때문입니다... 선한 삶이 많은 것을 변화시키지는 못하지만, 그러한 삶은 하나의 수단적인 것입니다...  내가 남을 도왔다고 해서,  그 도움 자체가  나에게 무슨 보상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렇게 하는 과정 가운데서 내 영혼의 눈이 떠지고,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지요...  이전에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크고 강한 어조로) 누가 가장 양심의 가책을 많이 느끼는 사람입니까?  악을 행하는 사람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일수록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법입니다...  그러나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그 행위 때문에 영혼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눈을 뜨십시오... 순간순간을 감동으로 사십시오... 사람이 받는 고통은 그 안에서... 내면 세계에서 받게 됩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그 사람을 미워하거나 저주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로 새롭게 자기를 얽어매는 멍에가 되기 때문입니다...  누가 당신을 해치려 들면 그대로 맞으십시오. 오히려 그것이 당신의 영혼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당신을 어렵게 하고 힘들게 하려는 영혼을 만난다면  대결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 대결은 다음 생에서 당신을 더 어렵게 만들 것입니다. 당신을 괴롭게 하는 데 집중하지 마시고 당신의 완성으로 나아가는 데 애쓰십시오. 모든 진리에 도달함에는 많은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당신을 괴롭게 함으로, 또는 기쁘게 함으로 진리에 도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데 방해가 되는 행동이나 삶을 살지 마십시오.  참 자유를 누림으로  그 마음을 확장해놓고 많은 사람을 담으십시오.  용서는 참 자유입니다.  진리를 가진 사람은 용서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소유하려 들지 마십시오.  모든 문제는 소유에서 나옵니다. 소유의 집착에서 벗어날 때 당신은 미움의 관계와 저주의 관계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주십시오. 가진 것을 준 자리에 그 만큼의 자유가 채워질 것입니다.  참 자유를 누리십시오. 사람으로부터 위로나 도움을 받으려 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성장을 방해하게 됩니다.  자기 내면을 바라보고  자기 영혼이 홀로 설 수 있도록 그렇게 하십시오.  누구도 당신을 해치거나 당신을 어렵게 하지 못합니다.  신의 영역에 있는 당신의 영혼을 누구도 해칠 수가 없습니다. 오직 당신을 멸망시킬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그러니 당신을 어렵게 하는 사람들, 멸망시키려는 사람들, 가진 것을 빼앗아가려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마십시오. 허상과 실상을 구별하시고 허상을 좇지 마십시오.  당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그 미워하는 행위와 당신을 따돌리고 어렵게하는 그 마음들은 허상입니다.  당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의 그 구속된 마음을 바라보시고 그 영혼의 결박에 집중하십시오. 그것이 실상입니다.  죄를 보지 아니하고 그 영혼을 볼 때 당신의 영혼은 무한히 확장되고 그 만큼 당신은 자유롭게 됩니다. 이 진리를 명심하십시오...



...우리의 생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해명하려 들지 말고 자기의 모습을 정형화시키려 하지 마십시오.  정형화될 때 또 자신은 구속됩니다.  사람의 영혼을 담을 그릇이 되려면  (속삭이듯)  자기가 정형화되지 않아야 됩니다.  그것이 선한 의미에서든지, 다른 의미에서든지 정형화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원래 가지고 있는 모습을 봐야 합니다.  무엇이 당신을 괴롭히려 해서 너무 힘듭니까?  사회적 지위와 관계 속에서 사람들의 평가가 당신을 그리로 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의 평가라는 것은, 사람들의 존경과 애착 같은 것은 허상이 만들어 낸 것들입니다...  허상이 욕심을 만들고, 욕심이 질투를 만들고 강박을 만듭니다.  그것이 당신뿐 아니라 많은 다른 사람들을 어렵게 하고... 끝내는 관계의 단절과 괴리를 불러오는 것입니다. 자신을 정형화시켜서 그 안에 안주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억울함에 대해서 스스로 위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정형화시키지 않는 가장 큰 훈련은, 억울한 상황에서 상대방의 영혼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고 그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출발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왜 피곤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허상을 좇아가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자기를 모함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대한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것 속에는 큰 것이 담겨 있고, 큰 것이 작은 것의 부분입니다. 우주는 한 점이고...  이 점들이 모여 더 큰 우주를 이루게 됩니다. 시작이 없는 것처럼 끝도 없습니다.  누가 부처입니까?  부처의 마음을 소유한 사람이 부처입니다.  작은 부처들이 모여서 큰 부처가 되고 바로 우주에 있는 부처가 각 사람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로써 작은 것이  큰 것을 품고 큰 것이 작은 것을 품는 것입니다. 생명의 하나하나가 모여서 우주에 있는 최고신의 일부분을 이루게 되고, 그 우주 최고의 신은 각 생명마다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시작이고 무엇이 끝입니까?  소유함으로 시작에 이르고 그 소유를 놓을 때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집니다.  영혼 사랑 하기를 힘쓰고 그 안에 간직된 하느님의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사람을  우상화하는 것은 그 사람을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누구를 우상화시킬 때는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또 그 우상화된 사람의 모습 가운데 있는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고 내 욕심을 따라, 또 많은 사람들의 욕심에 따라 만든 허상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것은 또 역으로 악인에 대해서, 그 악인의 영혼을 바라보지 못하고  그 악인의 마음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됩니다.  그 죄가 만들어낸 허상에 집중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릅니까?  나에게 선한 일을 해준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 가운데 있는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내게 이익을 주었다는 것 때문에 그 사람을 선하게 바라보는 것과, 나에게 악한  일을 행했을 때 그 마음 가운데 있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결과가 만들어낸 이미지, 그 것만 기억하는 것은 똑같은 것입니다.  사람을 악하게만 생각하는 것과, 행위 때문에만 선하게 생각하는 것은 둘 다 옳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 안에 깃든 하느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서 작은 것 안에 품어져 있는 큰 것을 보고,  큰 것을 보면서 작은 것 속에 담겨져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강한 어조로)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는  영혼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동물들도 영혼이 있지만...  사람들의 것과는 차이가 납니다...  맹목적인(?) 작용처럼 보입니다...  모든 사랑의 흐름은 같다고 하지만, 동물의 사랑과 사람의 사랑의 차이점은...  동물적 사랑은 하나의 경향입니다...  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어떤 경향들은 감정의 움직임대로 가게 되고...  하나님이 원하는 사랑은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영과의 교감을 통한 사랑을 원하고 있습니다... 동물의 사랑이 좀 더 저급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최상의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해야 하는 이유는...  사랑이 생명의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성간의 교합이나 가족간의 결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우주의 주된 흐름이 사랑이기 때문에  자기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우주 안에 있는 순수한 에너지와 결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강조하는 이유는, 사랑 받는 대상을 위해서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함으로 우주에 있는 에너지를 자기가 소유하고, 그 영혼이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가지고 있는 신비 중의 하나는, 사랑을 할 때에 사랑받는 사람 보다는 사랑을 하는 사람이 더욱 더 큰 힘을 얻게 되어 내면적인 성숙이나 개인적인 발전에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가두는 것이 아니라 열어두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물적 차원의 사랑에서 머물게 됩니다.  즉, 타고난 경향대로의 사랑, 생존본능에 근거한 사랑을 하게 됩니다... 자기 자식에 대한 사랑이나, 또한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에 대한 사랑은 궁극적으로는  생존본능에서 나오는 사랑입니다.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보았을  때는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도 사랑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을 일부 소유할 수는 있습니다...  자기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거나...  무조건 동물적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들, 감정이 앞서는 사랑들은, 그 대상을 사랑함으로써 자기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목적을 가지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생존적 목적을 가지는 사랑을 하게 되지만...  아...  너무 많은 메시지들이 쏟아져 들어와,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잠시 침묵한 후)  남자가 여자를 사랑 할 때에, 그 사람의 영혼을 보지 못하게 되면, 자손을 번식시키고자 하는 맹목적인 의무감이 그를 충동질 하게 됩니다...  자기를 사랑 해주는 사람에게서 왜 우리는 안도감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게 될까요...?  그것은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지 않는다는 동물적인 감정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중심이 되는 사랑입니다...  왜 부모들은 자녀가 더 잘되거나  더 성취하기를 원할까요...?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대리만족을 얻으려 하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높은 지위를 얻으려 하고, 세상에서 말하는 출세를 하려고 합니까...?  그것을 얻을수록 점점 더 자신의 존재기반이 확고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주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본질적인  힘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이라는 것은...  생존을 뛰어넘어...  자신의 생존을 뛰어넘어, 모든 것을 살리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살리는 사랑을 할 때에 비로소 모든 것이 완전해집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이 힘들거나 다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존권이 우선 되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생존권을 밟아서라도 자신이 생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주의 법칙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짓밟거나 침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강한 어조로) 소유함으로 얻는 것은 다분히 현상적인 것입니다. 진리의 본질은, 자기를 내어 놓음으로써 자기 안의 악한 기운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 자유로워진 만큼의 우주의 선한 기운들을 자기가 받아들여, 자신의 영혼이 더욱더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동물적으로 사랑하는 자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저 차원적인 개념의 사랑도 안아줄 수 있고 희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주적인 관점에서의 사랑과의 차이점은, 그것이 의례적이고, 찰나적이고, 자기만족적인 결과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우주의 원리에 부합되는 사랑은, 생명을 살리며 영원하며, 영속성이 갈수록 빛을 더해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딴 사람을 사랑할 때, 에로스적인 사랑이든 아가페적인 사랑이든 왜 사랑해야 되는지에 대한 이유가  명확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이 에로스가 주류가 될 때는...  실상은 자기만족적인 사랑이 됩니다...  결국은 서로에 대한 실망만 남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자신의 생존영역을  서로의 사랑을 통해서 확인받고 확인해야 하는 건데, 그렇지 못할 때는 양립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에로스로 시작한 부부사랑은 갈등으로 서로 마주치게 되는 것이고...  그 갈등으로부터 다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암묵적인 휴전과 묵시적인 경계를 정하고  그 선을 침범하지 않는 것으로 서로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주적인 관점에서 부부가 사랑을 하게 된다면, 서로의 영혼의 발전을 위해서 기뻐하게 되고...  우주의 원래적인 흐름 가운데 자신이 머물려고 하게 됩니다...  자기를 비우려는 마음으로 상대방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시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이 안에 들어와서 무한히 확장되므로, 또한 내 안에 있는 우주적 기운들을 나를 통해서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우주적 관점에서의 부부사랑은 끝없이 끝없이 사랑이 자기지속성 과정을 겪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주적 관점에서 모든 것을 이뤄내야 합니다.  그런 관점으로 부부가 서로 사랑을 하게 된다면...  겉치레나 위선이나 충돌을 회피하기 위한 거짓된 모습이 없이도  서로가 깊이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서로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즉, 우주의 기운이 충만해진다는 것입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만족적인 사랑으로 자녀를 대할 것이 아닙니다...  (잠시 침묵한 후)... 부부간의 진정한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상대방으로부터 받았던 여러 가지 상처들, 또는 만족하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서 겉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얘기하지만, 그 받아들여진 상처들 때문에 그 상처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상냥한 미소 속에 차가운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담기게 되고, 미소를 지으면 지을수록 상대방으로부터 멀어지는 서로의 모습이 있을거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깨뜨려야 됩니다...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그 기운들이 교감되면서 느껴지게 되고,  차가운 기운으로도 뭉쳐지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공통된 것입니다...  우주적 관점에서의 사랑이 원리를 생활에 적용시키십시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 카르마라고 하는 것은 자신에게 집착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 '이카루스'에 대해 아십니까?

 - 네. 계속 하십시오.

제 앞에 그림이 보이는데... 글자로는 '이카루스'라고 나오고 그리스 신화에서 새의 깃을 달고 날려고 했던 그 사람이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영역에서 이카루스가 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 인위적으로 영을 이해한다는 자만에 빠진다는 얘깁니까?

 ... 깃털을 다듬고 붙이는 것은 자유지만, 그것을 가지고 날려고 시도할 때는 떨어지게 됩니다... 어디서부터 우리의 행위가 중지되어야 할까요...? 깃털을 모으는 것부터 중지해야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몰랐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존재의 근거를 명확히 인식할 때에만,  진리를 소유하고 우주의 비밀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데에는 두 세가지의 부류가있습니다.   한 가지는 자기가 신인 양 착각하므로 태양 곁에서 자기 몸을 녹여 버리는 자가 됩니다.... 또 한 부류는, 원래의 신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신을 좇아가다가,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자기만족적인 믿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럴 듯한 도덕률로 가장하고, 인간의 능력에 대해서 너무나 과신하는 부류입니다....  (엄숙하고 강한 어조로)  이들은 모두가 실패하게 됩니다....  모든 영혼은 피조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나눔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모든 생명은 신의 부분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과 유사한 능력과  모습으로 나타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선을 명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자기가 신이라고 생각한다면 우주로부터 오는 흐름들을 막게 됩니다....  원래의 진리, 원래의 신을 왜곡된 모습으로 바라보는 것도 진정한 교류가 사라지게 됩니다...



...코끼리의 배설물을 보면 코끼리의 흔적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큰 사람은 큰 흔적을 남기고 작은 사람은 작은 흔적을 남깁니다...  누구를 평가할 때는 그 흔적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급하게 하려고 하지 말고, 인내를 가지고 그 사람의 영혼에서 그 흔적을 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은 흐려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거짓된 이미지와 정보를 통해서 자신의 흔적을 커다랗게 남기려고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그것들은 마치 배설물이 썩을 때처럼, 썩고 마르고 위축되어 흔적도 남지 않게 됩니다....  코끼리에게서 나온 배설물만이 정녕 코끼리의 것이요, 그것이 태양에 썩어져 없어지더라도 코끼리의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이 메시지의 의미를 목소리들이  제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코끼리가 배설물을 싸놓으면 그것은 사람에게 코끼리가 지나간 흔적임을 보이게 됩니다....  그것이 태양에 의해 마르고 부서지고 흔적조차 사라지더라도 코끼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코끼리가 아닌 것이 자기 허세를 위해 그런 커다란 덩어리들을  뭉쳐만 놓는다고 해서 자기가 정말 코끼리가 될까요?  원래 자기의 것이 아닌 허상들을 커다랗게 내놓고 자기의 생산능력이 아닌 것들을 거짓으로 내놓는다면 시간이 흘러서 그것이 사라질 때에, 결국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즉, 코끼리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보의 덩어리로 나오기 때문에 말을 더 잘 전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에 우리는 그 사람의 행위를 보고서 그 사람을 알 수가 있지만, 그의 흔적들은 시간이 가면서 기억 속에서 사라져갑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 흔적들은 계속해서 생기게 됩니다....  그것이  잊혀지더라도 다시 생산되고, 계속 생산됩니다....  즉, 그 사람은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런 것을 만들어낼 수 있는 영혼을 소유한 사람일 때에, 그것이 아무리 많이 생겨나고, 또 잊혀진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숨기고 부끄러운 것을 감추기 위해서, 마치 자기가 그러한 영혼을 소유한 것인 양 이미지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이 것이 사라지고, 때가 지나서 기억에서 지워질 때는 그 존재흔적조차도 남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왜곡된 이미지를 많이 만들어서 허탈한 결과를 만들기보다는 우리의 영혼들을 그런 수준으로 이끌어 올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칭찬, 명예, 선한 것들....  그런 것들을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높이 평가하겠지만, 정녕 내 안에 그런 영혼이 없을 때는 오히려 그것이 더 허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속일 것이 아니라, 내 영혼에서 내놓는 진실된 열매들을 녹여낼 수 있는 영혼의 그릇이 중요합니다....  그 것에 집중하십시오....  결과물들을 내놓는 것을 기억하지 마십시오....  코끼리는 자기가  배설물을 내어놓고도 그것을 기억하지 않고  나아갑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코끼리의 흔적을 발견하고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한 면들이나 선한 행위의 결과에 집중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에 집중하게 될 때 우리는 허상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사람들은 내가 그만한 그릇을 가지고 있을 때, 나의 흔적들을 보면서  나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만약 그런 것이 되지 않고 그런 허상들을 만들어내게 된다면....  사람들이 처음에는 따라오겠지요....  그러나 나중에는 그 근원을 찾지 못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코끼리가 아니라 쇠똥구리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코끼리를 찾으려 하겠지만, 코끼리는 없습니다.  대신 그것을 만들어냈던 쇠똥구리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코끼리의 배설물을 보고 코끼리를 찾다가 쇠똥구리를 밟을 것입니다...  많은 인생에 있어서, 사람들은 헛된 것을 좇아가고 자기 그릇에 맞지 않는 생산을 내려고 하고 자기를 위장하려고 하다가 그만 발에 밟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서 그런 그릇을 만들어야 합니다....  진정한 코끼리가 되어야 합니다...  과연 당신은 코끼리입니까, 쇠똥구리입니까....?  쇠똥구리는 덩어리를 작게 만들어 오히려 자기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큰 덩어리를 만들었을 때, 사람들은 코끼를 찾아가려다가 그를 밟게 되는 것입니다....  개구리 그림이 보입니다....  개구리가 목젖을 힘껏 부풀려서 끄르륵끄르륵 울 때, 그 소리는 산을 진동시키지만 개구리를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두려워 하지 않고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개구리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호기심을 가지게 되겠지요.  그 소리의 주인공을 알고 나면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전에 보였던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개구리지만 자기 몸보다 몇 배나 더 큰 울음소리를 내려고 애를 씁니다...  자기는 그 큰 소리를 내면서 만족할지 모르지만 듣는 이들은 그것이 개구리 소리라는 것을 압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그런 개구리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세속의 권력을 장악하려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  내 모습을 보십시오.... 내 안에 개구리는 없습니까...?  내 안에 쇠똥구리는 없습니까...?  우리는 인생의 거품을 없애야 합니다....  영혼의 거품들을 걷어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원래의 내 모습을 드러낸다고 해서 아무도 나를 탓하거나 멸시할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드러내는 사람 앞에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개구리요, 쇠똥구리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직자들이 자기도 코끼리인 양 착각하고 지내지만 결국 쇠똥구리입니다....  산이 울린다는 것 때문에 자기 울음을 호랑이 울음으로 착각하지만 결국 개구리울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잊어 버렸기 때문에 더 크게 울부짖으려 하다가 자기를 찢어 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자신을 찾아야 합니다....  자신을 찾아야 합니다....  내 모습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자기가 갈 길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신이 아닙니다....  자기의 노력으로 신이 될 수도 없습니다.

- 우리의 성장은 실제로 남들의 영혼을 사랑함으로써 가능합니까?

그것은 상호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것이 종속변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게 되면 우리가 성장하게 되고, 성장하게 되면 사랑하게 됩니다....  다만 우리가 사랑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겸손입니다....  내 안에 겸손함이 있다는 것은 자기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존재를 존재 그대로 인정해준다는 것입니다.  겸손이 무엇입니까...?  아버지가 아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겸손입니까?  머리를 숙이는 것이 겸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부모에게는 머리를 숙일지라도, 자기 자녀에게는 한마디의 말로 그 존귀함을 인정해줍니다...  겸손이란 한 존재의 존재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존경해야 될 사람을 존경하고, 다독거려줄 사람을 다독거리고, 내가 어느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이 겸손이지요....  사랑은 겸손을 먹고 자랍니다....  그러므로 당신 안에 얼마만큼의 겸손이  있나를 보십시오....  그것이 자라고 있으면  당신의 영혼은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  영혼의 성장과 진리를 찾는다고 자기수련을 하는 많은 움직임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기술적인 면과 초능력에 관심을 가지는 것 말입니다...

(단호하게) 많은 사람들이 헛된 것을 좇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들에 혹하는 사람들은  일만 명 중의 일만 명이 자기만족을 위해서  나아가고, 일억 중의 일억도 자기만족을 위해 나아갑니다....  저 셀 수 없는 모래알같이 많은 사람 중에, 단 몇십만, 몇몇만이 진정한 영혼의 성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영혼의 성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그 성장 자체에는 관심이 없어집니다....  나와 함께한 사람들이 얼마만큼 성장하느냐의 관심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여러 가지 면에서 변화된 것을 보고 내심 흡족해합니다....  그것은 초보적인 것입니다....  또한, 자기 만족적 방향으로 흐를 때에는, 그것을  쌓아 나갈수록 자기를 위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되는 것이지요...  ...  우리가 남을 섬기려 할 때는 딱딱한 콩과 같아서, 그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유익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물에 불리고 돌에 갈아서 자신의 모습을 사그러뜨려 두부로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먹히는 것과 같이 그렇게 섬겨야 합니다...  많은 선한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이유는 바로 이런 두부가 되는 과정입니다...  원래 가지고 있는 이 딱딱한 마음들을 불리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껍질을 벗겨야 하며,  원래의 형상조차 깨부수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뤄지지 않고는 사람들에게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부드러운 모습이 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선하게 살기로 했는데 많은 고통이 있다면....  맷돌에 가는 것처럼 고통이 있다면 이것은 내 안에 있는 옳지 못한 것들이 갈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콩을 맷돌에 간다고 그 화학적 성분이 달라지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섭취하기 힘든 물리적 성질만 달라질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신께서 주시는 시련과 인생의 고난을 통해 그것들을 갈아내고 순수하게 정제되어야 합니다...   ...  내 안의 진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사랑과 겸손입니다...  겸손함으로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랑이 바탕이 될 때 비로소 희생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희생하는 것을 통해서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참으로 초보적인 수준입니다...  겸손함으로 사랑하게 되고...  그것으로 희생하고 그 희생으로 많은 것들이 선하게 될 때, 그것이 내게 참 기쁨이 된다면 그것은 우주의 진동과 자기가 일치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이 땅에 왔을 때, 많은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율법을 잘 지키고 하나님의 명령을 잘 따르는 것만으로 마치 호랑이가 된 듯이 생각했습니다....  코끼리가 된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마구 울어댔고, 굴려댔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겸손하고 사랑이 있는 자가 나타났을 때, 그들의 허상이 무너지고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과 겸손은 모든 것의 실상입니다...  진리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진리 그 자체인 것입니다...  사랑과 겸손 중에 겸손은 밭이고 사랑은 열매입니다...  무엇이 중요합니까...?  열매가 중요하지요...  그러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없이 어떻게 열매를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왜 저들은 저렇게 시끄러울까...?  그러나 자신의 그 비웃음 소리가 바로 개구리 울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내 영혼의 거품을 덜어낼 때 참으로 나는 자신이 내고 있는 개구리울음소리를 들을 것 입니다...  내가 굴리고 있는 헛된 것들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서 손을 떼야 합니다...  내 안에 참 열매가 자라도록 자신이 디디고 있는 존재의 바탕을 살펴야 합니다...  그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진정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영혼을 사랑할 수도 없을뿐더러...  영혼과의 공감과 공명들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참으로 겸손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위선, 허세, 가려진 것들을 모두 제거하기 때문에 너무나 추하고 부끄러운 모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 앞에  자랑할 게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진정으로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 가슴에는 우주의 진동이 담겨 있고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에, 그 울림으로, 수수깡으로 집을 지은듯한 사람들의 그 위선과 세상이 주는 헛된 자랑거리들을 쓸어 버리게 됩니다...  이 시대는 자기를 바라봄으로 스스로 부끄럽게 된 사람들이, 자신을 가림으로 스스로 높게 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할 것입니다...  (강한 어조로) 이제까지는 사람들의 위선과 허상이 그대로 지켜지고 이어나왔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뀔 것입니다....  (탄식하듯) 참으로...  참으로  자기를 스스로 부끄럽게 할 줄 아는 사람이 지도자기 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자기비하가 아닌 부끄러움으로, 사람들 앞에 내놓을 것이 없는 그 마음으로 많은 영혼을 품어주고 ...  영적인 성장을 함께 나눌 것입니다....  (잠시 침묵한 후) 술병 속에 담겨진 비밀이 있습니다...  술은 자신의 성질이 변화되어서 사람들을 취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사랑이라는 효모를 채워야 합니다...  사랑이 채워지고 그 사랑으로 우리가 발효되어서 원래의 우리 모습과 우리의 맛이 새로운 성질로 변화되면...  그것이 사람들을 취하게 합니다...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은 먼저 자기를 발효시켜야 되겠지요...  술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자기를 발효시키고, 그것으로 사람을 취하게 할 수 있는 사람...  그러나 좋은 포도가 좋은 포도주가 되고, 나쁜 포도는 질 낮은 포도주가 됩니다.  자신의 포도밭을 관리하십시오...  향기로운 향을 내는 포도주를 생산하십시오...  (잠시 침묵한 후) 쌀뒤주가 있습니다...  쌀벌레가 쌀을 파먹는 그림이 보입니다...  쌀뒤주 안에 있는 벌레는 그 수명이 제한적이라고 합니다...  더 이상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 메시지의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 질문은 해도 될까요?

네...

- 지구상의 인구가 자꾸 늘어나는 이유는 뭡니까?

... 새로운 경험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한 영혼이 여러 육신을 통해 많은 경험을 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각성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일정한 수준에 다다르게 되면, 인구는 정리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면..
인구는 지금의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들게 됩니다... 한 영혼이 많은 몸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고,  악은 더 악해지고,  선한 것은 더욱 선해질 것입니다...

- 지금도 한 영혼이 여러 몸을 가진 경우들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 인구를 10분의 1로 줄이는 것은 재난과 질병입니까?

 ... 그렇게 되지 않기를 ... 바랍니다.

 - 그것은 인간들의 행위와 각성에 따라서 유동적이라는 말입니까?

... 그것은 마치 데생이나 스케치를 한 후에 수채화로 할 것인지 유화를 그릴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범위는 하나님에 의해서 정해지지만 그 안에서의 현상은 사람에 의해서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  그 때 육신을 잏은 영혼들은 어디로 돌아갑니까?  깨닫지 못한 채 어디로 돌아갑니까?

 ... 다시 뭉치게 될 것입니다...

 - 하나의 큰 덩어리로요?

아니오...  우선은  하나로 합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로 합친다는 것은 모든 영혼이  하나로  합친다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그 모습을 잊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딘가로 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심판의 모습, 재판정이 이미지가 떠 오릅니다...

- 다른 곳으로 가서 각각 심판을 받게 됩니까?

 ... 지금 제 머릿 속에는 심판에 대한 개념과, 모든 영혼이 진리에 이르게 된다는 개념이 같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정리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 심판을 받은 후 각성에 이르고 다시 성장을 계속한다는 뜻인가요...

...그것은 사람의 지혜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광대한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통해 만족을 추구하지만, 오히려 그것은 자기를 속박하고 자기와 관계맺는 사람들을 어렵게 할 뿐입니다.  참된 진리탐구의 목적은, 그것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발전하고 그  영혼들이 정화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영혼을 맑게 해주지 못하는 수행은 자신을 치장하는 요란한 많은 치장물 과도 같으며,  돈 많은  여자들이 허영으로 치장하듯이 자기를 꾸미는 것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더욱더 위험한 것은, 허영에 찌든 사람들은 누가 그것을 가르쳐 줄 수 있지만 정신적인 허영은 아무도 지적해 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영혼이 피폐되는 줄도 모르면서 병들어 죽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가 썩어가고 있는 것을 모릅니다.  참된 수행의 길은 내재된 자신의 깨달음으로,  섬기고 돕고 많은 사람들이 사는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입니다.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희생입니다.   도(道)의 완성은 사랑인데...  사랑의 전제는 희생이기 때문입니다...  희생하십시오...  희생의 모습이 남들 보기에 파계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이단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희생하십시오...  희생이 있은 후에야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을 행하는 자만이 도를 이룬 자입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행하는 모든 노력들은 허공을 울리는 메아리와 같습니다...   아무런 열매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 (ㅇㅇㅇ환자 자신을 가리킴)의 생애도 마찬가지가 될 것입니다.  많은 날들을 반복했건만, 깨닫지 못하고 같은 굴레에 속하는 것은 진정으로 섬기는 데 약했기 때문입니다...  행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잠시 침묵한 후)  ...  희생해야 합니다...  그것들이 이루어질 때 우리의 영혼들은 보다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불상이 보입니다..

- 무슨 의미죠?

(잠시 침묵 후) 부처님 같기도 하고 예수님 같기도 한 분이 오셔서... 제게 손을 대고 " 너를 자유케 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 긴장을 풀고 들어보십시오...

 사람은 자기 생에, 주어진 생의 의미와 목적대로 사는 것... 원래의 자기를 인식하는 것이 도(道)라고 합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놀라운 지혜나 지식이나 초능력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 원래의 자기를 원래의 모습대로 인식하는 것... 그것이 바로'도'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참 자기'를 볼 수가 없기에 그것을 보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그러나 '이런 방법이 참된 도다, 저런 방법이 참된 도다.'하고 말들을 많이 하지만...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적, 즉 자기를 살피고 '내가 누구인가' 를 바로 아는 것이 수행이요 참선이라고 합니다...계율이나 율법은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기를 가리려고 하는 요소들, 명예, 공명심, 욕심과 탐욕, 미움, 시기, 질투, 이 모든 것이 자기를 발견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주어진 하나의 한시적인 도구입니다...  '참 자유'는 자기를 바라볼 때,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바로 알 때에 주어집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도'의 출발이요 완성입니다...  내 안에 있는 무한(無限)은 하늘나라를 담을 만큼의 공간들입니다... "원래 악하지 않은 인간을 스스로 악하게 했다." 고 도 얘기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서경덕'이라는 이름이 보이고, "그는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 서화담을 얘기합니까?

 그렇습니다...  그도 도를 깨치지 못했고 이르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년에 이르러서야 자기의 수행이 헛되다는 것을 알고...  다음 생에서 자신이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기대하면서 죽었다고 얘기합니다. 많은 도인들...  원효대사 같은 사람들도  저 높은 곳에 도가 있는 줄 알고 힘차게 달려갔지만, 결국 이 '도'의 본질을 바로 알았기에 나중에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 원효대사 같은 분은 도를 깨달은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하나를 알았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다  버릴수가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영상과, 영상에 담긴 함축적 의미들이 있는데, 말로는 표현이 안 됩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옷을 입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 옷의 디자인이나 재질이나 색깔을 보지만, 옷에 대해 바로 아는 사람은  그 옷이 어떤 실로 만들어졌는지를 보게 된다고 합니다.  아무리 옷이 화려하더라도 그 옷이 짜이기 전에는 한 가닥의 실어었다는 것입니다...  '도'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 본질적인 실에 집중할 수 있는 것...  그 실에 집중하고, 화려하거나 비천하거나 볼품없는 옷이라도 그 종류와 상관 없이 그것이 모두 한 올의 실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바로 보고, 그것을 통합해서 취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도를 깨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미약하지만 하나의 비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은 그 한 올의 실을 어떻게 엮어 나가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한 올의 실이 고기를 잡는 그물이 되기도 하고, 사람의 몸을 따뜻하게 하는 옷이 되기도 합니다.  밧줄이 되기도 합니다...  아...   저의 그릇으로는 이런 영상들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완벽하게 묘사할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에 대한 사랑과 용서와 화합은 내가 누구인가를 바로 아는 데서부터 출발하게 됩니다...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진리의 출발은 내가 누구인가를 알 때...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빈 것...  비어있다는 의미입니다...  심장이 비어야 새 피가 들어가고, 위장이 비어야 새 음식을 먹을 수 있다...  물통의 물이 비워져야 새 물이 차고...  그렇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도나 진리나 지식을 자꾸 비우십시오.  그 만큼 새 것이 찹니다. 진리는 썩지 않고 영원한 것인데, 지식이 진부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가 진부하다면 또 버리고,  또 채우십시오.  버리고 채우는 가운데 참 진리를 알 것입니다.  다시 바꾸지 않아도 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부인과 부정의 역사는 끝나고, 확장되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넓히고 비워야 그 안에 상대의 사랑이 채워집니다...  누구를 처음 사랑했을 때를 떠올려 보라고 합니다...  사랑할 때는 자기 마음이 온전히 텅 비어 있다고 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것이 우리를 오염시킨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의 토인이 북을 치는 모습이 보입니다...  빈 북이 큰 공명을 내고, 북의 이편과 저편 사이가 비어 있지 않으면 울리지 않고 들을 수도 없습니다... 내 영혼이 비어 있고, 채워지지 않고...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이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음의 공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비어야 합니다...  나를 알지 못할 때,  나를 알려고 무엇인가로 채우게 되고, 그로 인해서 공명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나를 알게 되면  더 이상 헛된 것으로 나를 치장하려 하지 않고 그럼으로 드디어 내 속은 텅 비어서 무엇이든지 수용할 수 있게 됩니다.  내 속은 텅 비어서 내 것들을 더 크게 울려냅니다...  그 공명은 더 커집니다...  가장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은 가장 크게 비어 있습니다...  지식이나 진리라고 말하는 것으로도 자기를 채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이 그것이 디딤돌이 될 줄 알고 있지만, 자신의 코를 괴롭히는 썩은 재료가 될 것 입니다...  누가 가장 부끄러워하겠습니까? 더 많은 지식을 쌓으려 하고 더 많은 수행을 하려 했던 사람들이 도를 알았을 때, 그 자신의 헛된 노력들로 인해 부끄러움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그것이 필연적인 과정이 되겠죠...  "사람을 사랑하라." 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리고 먹다 남은 갈비처럼 뼈에 살이 얼마남지 않은 것들이 계속 날아다니는 그림이 보입니다...  어떤 교훈이 담겨 있는데...  정리가 잘 안 됩니다...  낚시터에서 지금 낚싯대를 드리우고...  미끼를 따라  큰 고기와 작은 고기가 낚싯바늘에 걸리는 그림이 보입니다...  두 가지 대비되는 그림이 보입니다...  고래 잡을 때, 작살로 잡을 때에는 속이지 않고 바로 공격한다고 합니다... 도를 닦는 것은 한 가지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작은 것을 낚을 때 쓰는 방법을 큰 것을 낚을 때는 쓸 수 없습니다.  즉, 크게 깨달으면 기존의 방법이나 기존의 교리와는  완전히 다른 방법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작은 고기를 낚는 방법에 익숙해져서, 큰 고기 낚는  방법을 모릅니다...  참된 진리를 알고 그것을 깨달은 사람은 우리의 시각으로 볼 때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자기 기준을 버릴 것에 대해 말하고...  규정짓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이 진리로 가는 길이다' 라는 식의 규정을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생퇴행을 통해서 마스터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쌓아놓지만, 이것이  다 먼지가 되는 그림이 보입니다...  이 메시지를 듣고 우리의 삶이 바뀌지만, 때가 되면 다 버려야 된다고 합니다...  절대로 쌓아두려 하지 말라고 합니다...  버리지 못하면 자기를 썩게 만들고 새것을 받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수단이요 과정이지, 이 자체가 우리의 목적이나 추구하는 가치가 아니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달걀이 병아리가 되려면 자기를 구성하고 있던 하나의 껍질을 부정해야 되는 것처럼, 참진리에 가는 길은 우리가 옳다고 했던 마스터들의 목소리까지도 부정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것이  더 강한 긍정이라는 것...  부정하라는 것이 초점이 아니라,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진리수행의 기준으로 평가하지 말라고 합니다...  각자는 각자의 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 자기를 발견한다는 것이죠... 자기를 바로 보게 되면 그 안에 있는 하느님을 보게 된다고 합니다...  선도 악도 다 볼 것이 아니고, 자기 안에 있는 하느님을 볼 수 있는 것...  진지한 대화...  (강하게)  당신의 마음을 역동하는 진리로 채우십시오.  살아 있는 것으로 채우십시오...  마스터들이 선생님께 질문을 합니다.  이때까지 선생님이 배워왔던 지식들...  지금 볼 때 그 것들이 산 것인지 죽은 것인지 묻습니다....

- 대개는 죽은 것이죠...고정된 것입니다...

 지금 마스터들이 선생님께 얘기하고 대답을 듣기 원하는데... (강하고 열정적으로) 바로 그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죽은 것이 전혀 가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새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죽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 것을 받아들였을 때는 죽은 것처럼 여기고 자기를 비우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당신을 완성의 경지로 이끌 것입니다...  이 전생퇴행의 방법이 당신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새로운 진리에 접근하게 하겠지만,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죽은 지식으로 아십시오.  이것에 집착하지 마시고,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얘기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더욱더 확장되어야 하며, 새것들로 채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당신을 그렇게 인도할 것입니다. 그렇게 이끌 것입니다.  우리는 기대하는 바가 당신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그 편협하지 않은 사고를 존중합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정말 예수를 믿는 진정한 성자가 되려면 예수를 욕할 수 있어야 한답니다...  이것은 예수를 존경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틀에 박힌 예수의 모습을 깨뜨리라는 의미입니다...  오늘의 주제는 "화석화시키지 말라." 는 것 같습니다...
창조그룹 희망 (希望:Hope) - 6장


​사난다 임마누엘

사랑하는 여러분!

저 사난다(Sananda)는 사랑을 전하기 위해 와 있으며, 희망(希望:hope)을 전하기 위해 와 있습니다. 저의 분신 중에 카프리콘 함선(Starship Capricorn)에 승선하여 있는 이수(Esu)는 사랑의 메신저이자 행성 유란시아의 왕자로서 본연의 책무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을 연민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상위 영과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움직이는데, 아쉬타 사령부(Ashtar Commender)를 지휘하고 있는 저의 분신인 ‘이수 사난다 쿠마라(Esu Sananda Kumara)’ 또는 ‘이수 사아난다 쿠마라(Esu Sa A Nandah Kumara)’ 는 아쉬타 사령부의 함대 사령부를 총괄 책임지는 총사령관으로서 봉사하고 있으면서 저와 모든 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로 알려진 저의 분신은 대사(Master)로서, 행성 유란시아의 스승으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그 외 다양한 분야에서 봉사를 하고 있음을 전하면서 우리들은 고유의 코드가 주어져서 은하연합에 소속되어 있고, 창조그룹에 기록되어 있으나 여러분들에게 공개할 때가 아니어서 그때가 되면 공개할 예정입니다.

여러분들이 성단들의 이름을 신화속의 인물이나 동물들 또는 상징물로 지정한 것을 부정하지 않는 것과 우리들의 호칭 또한 여러분들에게 낯설지 않게 하려는 의도 때문입니다.

은하연합과 성단연합과 항성연합과 행성연합에 부여된 고유코드명을 공개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은하에 공식적으로 등록되고 코드명을 부여받게 되면 그때에 알려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5차원의 행성으로 정식데뷔하면 5차원 푸른 행성 위원회에 소속될 것이고, 항성연합에 지역 행성으로서 등록될 것입니다. 체계시스템에 정식 등록되면 과학과 문화들을 소개할 것입니다. 자격이 허가된 행성들은 혜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각 시스템마다 그 시스템을 관리하는 수도 역할과 중심센터 역할을 하는 행성이 있습니다. 이곳이 천국(heaven)의 역할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스템에 소속된 행성들의 진화와 상승을 감독하고 관리하는 센터이고 CPU로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각 행성들이 진화의 시계에 따라 잘 따라오는지 수시로 점검하고, 전문팀들을 파견하여 검토하도록 하면서 상승하는데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체계시스템을 책임지고 있는 중심태양으로서 수도로서의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유란시아서에 체계 수도로 소개된 사타니아의 예루셈(Jerusem of the Satania System)이 바로 여러분 행성 유란시아의 중앙태양이자 체계 수도이며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셈(Jesusem)의 24위원회는 천상위원회이고 그 수장이 바로 천국을 책임지고 있는 신(God)으로서 역할을 담당하는데, 라노난덱 아들(Lanonandek Son's)인 라나훠지(Lanaforge)가 지금의 행정수반의 자리에 있기 까지는 은하 안에는 루시페리안(Luciferians)의 반란사건으로 어수선 할 때이었으나 빛나는 지혜를 발휘한 덕분에 예루셈을 방어할 수 있었습니다.

플레이아데스의 중앙태양인 알키온(Alchion) 또는 알키오네(Alchione)는 바로 예루셈(Jerusem)이며, 플레이아데스 항성계는 바로 사타니아 체계(Satania System)를 지칭합니다.

이곳에 소속된 태양들과 행성들은 5차원의 행성으로 상승해야만 공식적인 접촉과 소통이 이루어지고, 4차원의 행성들은 부분적으로 이루어지며, 3차원 이하의 행성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행성 유란시아도 3차원의 행성으로서 중앙태양인 알키온(Alchion)의 관리감독을 받고 있었지만 인류들에게는 나타나지 않는 형태로 이루어져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저세계인 아갈타 왕국(Kingdom of Agarta)은 공식적인 회원으로서 상호교류가 이루어져 왔고 긴밀한 유대관계를 가져왔습니다. 아갈타 왕국의 우주선들은 자주 중앙태양을 방문하며 정보를 공유하였으나, 지상에 살고 있는 인류들만이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행성 유란시아도 5차원의 행성으로 상승하여 위원회의 정식허가가 이행되면 지저세계인 아갈타 왕국과도 공식교류가 이루어질 터이고, 사타니아 체계의 행성들과도 교류가 이루어질 것이며, 성단인 놀라시아덱 시스템(Norlatiadek System)과도 교류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별자리 아버지인 지고자(至高者:Most High)와도 만남이 이루어질 것이고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파격적인 일들이 벌어질 것입니다.

행성 유란시아가 칼리가스티아(Caligastia) 영주의 반란으로 추락한 이후, 모든 통신과 연결된 우주격자들이 단절된 이후로 순환회로를 통한 어떤 만남도 이루어질 수 없었기에 CM Aton의 헌신적인 물질아들로서의 현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아직도 어둠속에서 방황하는 행성으로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지난날 우주존재들의 유란시아 방문들이 공식적이지 않고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이루어진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단지 자신들의 야욕성취를 위한 유란시아 방문은 천상위원회와 유란시아 영단의 허가가 없었기에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멜기세덱(Melchized다)그룹의 일원중의 하나인 마키벤다(Machiventa)의 증여가 이루어지고 CM Aton의 증여가 이루어진 행성 유란시아를 지금까지 지켜보고 있었으며, 앞으로 예정된 하강하는 아들들 중 집정관 아들(Maglsterial Sons)인 아보날 아들(Avonal Sons)의 증여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교사 아들인 데이날(Daynal)의 봉사가 있을 예정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창조근원의 뜻이 행성 유란시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는 유란시아가 상승하려는 길목에서 본궤도로 정확하게 진입할 수 있도록 봉사하고 있는 것이고, 전문가들을 파송하여 인류들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르시겠지만 다양한 세계에서 봉사의 목적으로 들어온 우주인들이 인자들의 모습을 한 채로 여러분들 틈에 섞여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존재들 또한 때가 되면 여러분들 앞에 자신들의 본모습들을 공개할 것이고, 아갈타제국에서 파견한 존재들 또한 때가 되면 본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루셈(Jerusem)에 공식적인 회원으로 등록되는 그날까지 우리들의 봉사는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들의 수많은 분신들이 각 세계에서 자신들의 역할들을 수행하고 있으며 우리와 연합된 체계로 봉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홀로 떨어진 섬처럼 고립된 상태로 있었던 것은 우리가 여러분들을 외면하였거나 등한시 한 것은 아닙니다. B. C. 350년경에 플레이아데스의 우주인들이 지구를 떠나 지신들의 별로 돌아간 이후에 한시적으로 버려진 것처럼 보였지만 어둠의 음모는 끊임없이 시행되어 왔었기에 눈을 거두지 않았던 것입니다.

곧바로 네바돈 은하의 주관자인 CM Aton의 증여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어둠의 세력들은 지구가 버려지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고, 천상의 깊은 뜻이 있음을 알게 되었지만 저들의 전진기지로서의 효용성을 가지고 있던 지구를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은하연합 함대에 밀리고 나서 절치부심(切齒腐心)으로 기회를 노리고 있던 어둠의 세력들은 인류들을 유혹하고 현혹하여 중앙태양 시스템에서 영구히 퇴출되어 자신들의 영역으로 복속시키려는 음모를 발동시켰으며, 순환고리에서 떨어져 있던 행성 유란시아의 형편을 철저하게 이용하여 인류들의 의식 속에 부정성을 심기 시작했으며, 자신들이 제공하는 정보들을 수신하는 메신저들을 통하여 거짓 정보들을 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인류들은 저들의 술수에 속아 유언비어에 농락당했으며, 거짓이 진실인 것처럼 받아들였음이니, 양의 탈을 쓴 늑대를 알아보지 못한 양들처럼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난 세기동안 아무 방해 없이 어둠의 세력들은 인류들을 볼모(Hostage)로 삼아 은하연합 함대의 공격을 저지할 방패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러분들은 저들의 기만(欺瞞:deception)에 속아 꼭두각시처럼 이용당했으며, 오히려 그것이 하늘의 뜻을 따르는 것인 양 속아 넘어갔던 것입니다. 저들은 여러분들에게 천사처럼 행세하였고, 신(God)처럼 행세하였음을 알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루시퍼(Lucifer)의 속성이나 세력들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사탄(Satan)의 세력들에 대해서도 알지 못합니다. 진실을 그동안 모두 숨기고 철저하게 여러분들을 속여 왔었기에 알 수 없었던 것이지요. 오히려 사탄과 루시퍼의 수족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 조차도 모르고 있었음이니, 인류들이 얼마나 무지한지 알 수 있습니다.

순환 고리 시스템의 단절이 얼마나 커다란 정보공백과 후유증을 몰고 오는지 유란시아를 통하여서 여실하게 드러나는 것이고, 진화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폐단의 결과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고 와 있으며, 순환회로와의 정상적인 교류와 소통을 통하여 본래의 자리로 빠르게 회복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다른 체계들과의 우호적인 방문과 교류가 이루어지도록 할 것인데, 지금까지 단절된 채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둠의 세력들의 숨기어진 진실들이 광명처럼 드러날 것인데, 이제는 더 이상 양의 탈을 쓴 채로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양의 가면을 벗고 늑대의 본모습을 나타낼 것이고, 천사로서 더 이상 연극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저들의 검은 야욕을 드러내고 발톱을 세울 것입니다. 숨어있던 저들의 동조자들도 모습을 드러낼 것이어서 더 이상 속이는 일들은 있지 않을 것입니다.

저들은 인류들을 자신들과 하나로 엮기 위하여 사탕과 채찍을 사용할 것이고, 고문과 회유를 할 것입니다. 동조하지 않으면 고통 받을 수밖에 없음이니, 물질의 모든 권력과 자리들을 저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자신들이 틀어쥐고 있는 금권과 힘을 앞세워 여러분들을 탄압할 것이고, 회유와 강압정책을 펼칠 것입니다.

이것이 숨기어졌던 저들의 진실인데, 인류들을 고통스럽게 하여 자신들의 덫에서 빠져 나갈 수 없도록 하는 것이고, 자신들의 수족으로서 부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인류들의 각 종족들과 민족들과 인종들에 숨어들었으며, 왕족들과 귀족들과 권력층에 숨어들었기에 모든 분야에 걸쳐서 저들의 세력이 파고들었다는 것이고, 이것은 이미 이천년 이전부터 저들의 음모에 의해서 실행되어 왔다는 사실입니다.

인류들은 이들에 의한 시험과 난관을 앞두고 있으며, 자연재해와 재난과 함께 더 증폭된 고난과 고통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언서에 기록되어 있던 그 이야기들이 실행 될 터인데, 여러분들의 인내를 시험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려운 난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빛의 자녀로서 굳건하게 자리할 여러분들에게 희망(希望:hope)을 전하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둠의 인자들이 누구인지를 모두 알고 있고, 저들의 음모 또한 모두 알고 있지만 그 동안 은밀하게 숨기어져 왔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알 수 없었습니다. 때가 되어 저들이 그림자 속에서 자신들을 나타내면 여러분들이 직접 알게 하기 위해서 공표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들 스스로가 빛의 진영과 어둠의 진영으로 나뉘는 것을 볼 것이고, 누구누구가 거기에 가담하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하라 하는 것입니다. 신(God)앞에 서기전까지 저들의 진실과 여러분들의 진실을 직접 목격하여 분별하라 하는 것이자, 알곡과 쭉정이를 선별하려 하는 것입니다.

물론 천상에서 여러분들이 모르게 할 수도 있지만 여러분들이 진실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광명에 드러나는 것처럼 모든 진실을 나타내어 여러분들 스스로 선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구분 없이도 여러분 스스로들이 자신의 자리로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선택과 결정이 남아 있는 것인데, 이 시련의 과정을 통하여 선택권을 여러분들에게 부여하는 것입니다. 빛의 길과 어둠의 길은 나뉘어져 있지만 우리는 지켜보기만 할 것입니다. 어느 길을 선택하여 갈 것인지는 모두 여러분들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평탄하고 안락한 길과 비좁고 거친 길 중에 어디를 선택하던 여러분들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고, 탓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선택한 길의 저 편에는 선택에 따른 행로(行路:road)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여정을 따라 펼쳐진 진화의 길을 가면 되는 것입니다. 어느 곳이 좋고 나쁘냐는 이분법적인 이해는 없습니다.

영혼의 상승의 길은 좋고 나쁨이 없으며, 오직 과정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화려한 과정도, 험난한 과정도, 외롭고 쓸쓸한 과정과 우아하고 행복한 과정도, 빛나는 과정과 그렇지 못한 과정도 하나의 과정일 뿐이며, 영혼의 상승여행에 모두 필요한 코스라는 것입니다.

어느 한곳도 필요치 않은 것은 없으나 체험과 경험이 쌓이다보면 영혼은 어느 것이 현명하고 슬기로운 선택인지를 지혜를 통하여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가야될 길을 선택하게 되는데, 지혜로운 영혼은 현명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영혼은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란시아에 살고 있는 인류들 중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인류들을 지켜보고 있으며, 영혼의 진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설령 현명한 선택을 하지 않는 인류들이라 하여도 영혼의 상승여행을 통하여 현명한 선택을 할 때를 기다리고 지켜볼 것입니다.

그것이 오랜 기간이 소요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간 영혼들은 지난날에 그러한 과정들을 이미 이수하였기 때문이고, 그런 과정들을 통하여서 지혜롭게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들이 거저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책임과 대가가 반드시 따르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자 질서이기 때문인데, 공짜로 주어지는 기회는 없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처럼 과정을 거치지 않고 상승하였다 하더라도 반드시 거기에는 책임이 뒤따르게 되어 있어서 우주적 카르마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희생을 해준 존재에게 그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다음 과정으로의 상승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바로 진화가 멈춰서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은하에서는 철저하게 유란시아를 통해서 직접 겪었던 것입니다.

은하의 어떤 존재도 이제는 알게 되었으며 그 사실 때문에 행성 유란시아에 관계했던 성단들의 위원회들이 참여하여 최선들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일으켰던 업보(業報:retribution fo the deeds)를 후손들이 해결하려 모인 것이지요.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들의 별자리의 진화는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에너지의 법칙이라고도 합니다. 주어진 에너지는 반드시 다시 돌아오게 되어있는데, 비워진 것만큼 반드시 채워 넣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삶을 살면서 소진되어버린 에너지는 열심히 봉사를 통하여 되갚는 것인데, 영혼의 상승에도 영혼의 봉사를 통하여 되갚는 것이고, 자신의 진실을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 바로 빚을 갚았는지 아님 남았는지를 보게 하는 것이며, 그것을 통하여 어떻게 남은 빚을 갚을 수 있는지를 계획하고 설계하여 진화의 과정을 가도록 하는 것이 상위 영들의 몫이라 하는 것입니다. 

상위의 영들은 열심히 봉사의 길을 걷고 있는데, 그것이 영혼의 진실과 가까워지는 것이고, 영혼의 상승에 일조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이 지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안내하며 봉사하고 있으면서 창조근원의식의 뜻이 어떤 것인지를 점차 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우리 창조그룹의 뜻을 알기위하여 상승하는 것처럼 우리도 근원의식의 뜻을 알기위하여 상승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우리의 위치에 도달할 때가 되면 또 그런 상승여행이 계속해서 이루어지겠지요.

인생은 덧없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끝없는 여정이 펼쳐져 있음이니, 어디 한순간 멈춰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멈춰선 것처럼 보이고 느껴도 영혼은 계속해서 상승의 과정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여러분들이 과정을 통과하며 어떤 인생을 사는 것이 가장 가치 있고 행복한 것인지 찾아가는 것이고, 어떤 삶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이지 찾아내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방향성이 나뉘겠지요. 그런 통과의례를 통하여 성장하며 진화하는 것이지요.

행성 유란시아에 원시인류가 태동되고 나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진화를 통하여 의식을 상승시킨 것이 바로 그런 것인데, 어느 민족, 어느 국가, 어느 환경에 태어나 가치를 발견할 때까지 윤회(輪廻:transmigrate)를 거듭하며 살아온 것입니다.

인생이 무르익어 황금기가 다가오면 모든 것들이 소용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부질없음을 돌아보면서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찾아가게 되는데, 잃어버린 보물을 찾거나,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것처럼 말이지요.

미로(miro)처럼 얽혀 있는 이 길은 결국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도록 인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서 찾지 못하던 그 가치를 자신의 내면에서 찾게 하는 것은 영혼의 소리가 당신 자신들의 진실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입자들과 원소들은 그 가치가 소멸하면 모두 분해되어 태어난 자리인 빛으로 돌아갑니다. 그것을 알 리 없던 여러분들은 물질에서 가치를 찾으려 달리다 보니 생을 마감하는 동안 찾지 못하고 인생을 종료하고 마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 수행도 명상도 기도도하지만 누가 가르쳐 주지는 않습니다. 영혼의 이끄는 소리가 내면에서 여러분들을 이끌어 빛의 세계로 안내하게 프로그램 되어 있었음이 바로 인류라는 창조물이었습니다.

영혼은 여러분들의 의식을 깨우고 진실을 찾을 수 있도록 뿌리를 제공하여 자신의 근원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를 돌아보게 하면서 영혼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지요. 이 여행은 여러분들의 의식이 결국 빛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게 하고 그 빛 가운데에서 무한하고 무궁한 가치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영혼도 의식의 한 조각으로서 일부분뿐이지만 여러분들이 영혼의 진실을 모두 찾아야만 의식을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의식은 빛을 찾아가는 여행을 하게 될 것이고 궁극에는 근원의 자리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빛은 여러분들이 아는 것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광원이 있는 빛이 있으며, 반사체가 있어서 빛을 내는 빛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소멸되는 빛이 있고,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빛이 있습니다.

우리의 우주는 어둠 가운데 소멸하지 않는 빛이 들어와 은하라는 형태의 확산된 빛의 덩어리를 탄생시키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오랜 억겁의 시간동안 빛은 그냥 빛으로서 있다가 의식이라고 하는 형태가 물론 형태가 없지만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의식이 형상화하여 나타났고 분화현상을 통하여 의식들로서 나뉘게 되었습니다. 은하창조의 뜻에 의해 의식이 대분화를 일으켜 속칭 빅뱅(big bang)이라는 형태로 우주의 시작을 알리게 된 것입니다.

다수의 의식들이 창조에 뜻을 같이하여 모여들었으며 다양성을 시험하고 융합하는 곳으로서 태동된 은하가 되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여러분들은 우리들을 창조그룹이라고 표현들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우리를 어떻게 표현하든 우리는 네바돈 은하의 창조의식들이며 다른 우주의 창조의식으로서 이곳의 창조의식인 CM Aton의 요청으로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저 사난다 의식(Sananda Consciousness)은 우주창조의식은 아니지만 창조근원의식과 여러분들 영혼들 사이에 중재자로서 CM Aton과 여러분들이 하나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참여하게 되었고 창조근원 의식의 사랑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를 돕기 위하여 창조의식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정보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며, 희망(希望:hope)이라는 부제를 달기로 한 것입니다.

지난날 CM Aton은 자신의 증여가 종료되고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우주에서 이런 경우는 없었는데, 행성의 물질 아들로서 자신을 증여하여 지극한 창조생명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 것도 모자라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창조의식의 깊은 뜻이 숨겨져 있는데, 행성 유란시아의 창조 목적과도 부합되는 것이었습니다. 행성 유란시아의 생명들과 행성자체가 하나 된 의식으로 융합하여 창조그룹의 뜻이 결과로 나타나게 하려는 것과 창조근원으로의 접근이 더 용이하게 될 수 있도록 그 문이 탄생할 수 있게 목적한 것인데, 일반적인 스타게이트인 웜홀이나 화이트홀, 블랙홀과는 개념자체가 다른 것입니다.

스타게이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질량과 용적률이 맞는 수준의 별을 폭파시켜서 행하였다면 행성 유란시아는 행성을 폭파시키지 않고 빛의 증폭을 통한 고에너지 방출에 의한 방식을 통하여 중앙우주와의 고속도로를 개통하려고 하는 목적이 숨어있었던 것입니다.

외곽우주인 초은하단에서 중앙우주(Havonaen)로 직접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보나엔에서 문을 열어주어야만 했는데 이것을 통하지 않고서도 행성 유란시아에서 하보나엔(Havonaen)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초고속도로가 개통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준비해온 우리는 CM Aton의 유란시아 재방문을 기다리는 것이고, CM Aton에 의해 잘 진행되리라 봅니다.

사난다 의식 역시 같이 참여하여 대신성한 우주계획이 실행될 수 있도록 추진할 목적으로 다시 지구를 방문할 것이며, 행성지구의 왕자로서 역할 할 것입니다. CM Aton은 행성지구의 군주로서 자신의 계획을 우주에 알릴 것이고, 이 계획의 성공으로 어느 우주에서도 단 한 번도 시도 한 적이 없었던 일들을 펼쳐 놓을 것입니다.

우주들은 의식의 성향에 따라 고유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네바돈 은하는 각 우주들의 장점들을 취합하여 실험의 장으로 열었으며, 융합되는 과정동안 충돌되는 부분들과 부조화를 이루는 부분들이 있어왔지만 너무나도 아름답게 모든 우주들의 장점들이 잘 스며들어 용광로에서 녹아 하나의 철로 나오는 것처럼, 잘 융합되어 최상의 우주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인데, 그 중심에 바로 행성 유란시아가 있었던 것이고, 인류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CM Aton의 계획에 의해서 첫 사원을 열었고, 중간점검이 이천년에 이어졌으며, 멋진 결과를 위해서 CM Aton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각의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개성화 되어 있지 않아서 개인 존재로서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창조그룹으로 지칭되는 의식은 하나 된 형식으로 있으며, 눈에 보이는 에너지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빛을 내는, 소멸하지 않는 빛이라고 할 수밖에 없음이어서 CM Aton의 재방문이 이루어지게 되면 우리도 역시 CM Aton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라고 표현하는 동질의식과 각각의 특성이 있는 의식으로 볼 수도 있어서 창조그룹의 12인위원회라고도 하지만 우리는 하나임을 아셨으면 합니다. 창조의식의 필요에 의해 창조주로서 CM Aton이 형성화되어 나타난 것이고, 근원의식의 사랑에 의해 사난다(Sananda)가 형상화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사난다 의식은 우주전체에 보편하게 함께하고 있으며, 의식의 뜻이 구체화 되면 개인성을 갖는 존재로서의 형상이 창조되는 것입니다. 사난다 임마누엘도, 이수(Esu)도, 예수(Jesus)도, 쿠마라 그룹의 한 일원으로도 나타나 봉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CM Aton은 창조주로서 의식에 의해 구현 화된 것이며, '게오르거스 세레스 하톤(Gyeorgos Ceres Hatonn)'은 은하연합을 통솔하기 위해서 구체화한 분신이란 것입니다.

의식의 뜻을 소리화하고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방법인 것인데, 행성 유란시아의 인류들에게는 창조주 CM Aton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예수(Jesus)라는 호칭으로 불렸던 ‘요수아 벤 요셉(Joshua Ben’ Joseph) 이라는 인자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빛이 세상에 들어왔다.’와 말씀이 육체를 입고 왔다.’는 표현은 이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CM Aton의 목소리는 예수(Jesus)를 통하여서 인류들에게 전달되었으며, 예수의 눈을 통하여서 CM Aton의 세계가 인류들에게 전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인류들이 CM Aton을 알아볼 수 없었지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주의 창조주가 인자로서 앞에 서 있으니, 자신들과 똑같은 창조물로서 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진실을 알았다면 바로 알아보았을 텐데, 그것은 CM Aton의 진실을 전하는 메시지와 CM Aton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였던 부분들을 알았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CM Aton은 행성 유란시아에서 두발로 걸으며 자신의 장대한 계획을 점검하고 차질이 없도록 수행한 후 떠났던 것입니다.

인류들이 무지한 부분도 CM Aton의 계획을 저지할 수 없었으며 어둠세력의 방해공작도 저지할 수 없었습니다. CM Aton의 계획은 온전한 것이기 때문이었기에 방해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CM Aton의 계획은 무르익어가고 있으며, 유란시아에서 펼쳐지게 될 구체적인 계획들이 속속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위해 이곳에 와있기 때문입니다.

우주연합은 이것을 위하여 네바돈 은하에 진입한 것이며, 은하연합을 재편했던 것입니다. 은하의 어떤 존재도 알 수 없었던 계획이었기에 전면적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행성 유란시아의 어둠의 세력들은 신성한 대우주계획을 알 수 없습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범위 내에서의 정보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어떻게 실행되는지 결과를 보고서야 이해를 하겠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뒤이기에 손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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